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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의 연차 싸움을 보며... 맞벌이 7년차가 생각하는 '공평'

신혼부부의 연차 싸움을 보며... 맞벌이 7년차가 생각하는 '공평'

요약

최근 삼성 AI 구독 광고를 봤다. TV 설치 문제로 누가 연차를 쓸지를 두고 부부가 실랑이를 한다. 세탁기 때는 내(남편)가 썼으니 이번엔 네(아내)가 쓰라는 식이다. 결국은 설치 기사가 점심시간에 와서 둘 다 연차를 아낀다. 재미있는 광고였다. 신혼은 이렇게 지킬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 가전 설치는 방문 한 번이면 끝난다. 아이가 아파서 내는 연차는 예고가 없고, 끝이 없고, 점심시간에 와줄 사람도 없다. 연차 하루를 따지던 부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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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에서 서로 연차를 쓰라고 말하는 장면. 삼성 AI 구독 TV 광고 중.
▲광고에서 서로 연차를 쓰라고 말하는 장면. 삼성 AI 구독 TV 광고 중. ⓒ 삼성 AI 구독 TV 광고

최근 삼성 AI 구독 광고를 봤다. TV 설치 문제로 누가 연차를 쓸지를 두고 부부가 실랑이를 한다. 세탁기 때는 내(남편)가 썼으니 이번엔 네(아내)가 쓰라는 식이다. 결국은 설치 기사가 점심시간에 와서 둘 다 연차를 아낀다. 재미있는 광고였다. 신혼은 이렇게 지킬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 가전 설치는 방문 한 번이면 끝난다. 아이가 아파서 내는 연차는 예고가 없고, 끝이 없고, 점심시간에 와줄 사람도 없다. 연차 하루를 따지던 부부는 그때부터 무엇을 따지게 될까.

공평 부부의 등장

AD 나는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뒤 1년 동안 단축근무를 했다. 자연스레 급여와 각종 수당 등이 줄어드니 연간 소득이 1천만 원 정도 줄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남편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앞서 육아휴직을 한 1년 동안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았고, 그만큼 나중에 받을 연금도 줄어든다는 것도 덧붙였다.

내가 손해를 봤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감당한 몫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원했다. 남편이 그 가치를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인정해주기를 바랐다. 숫자는 입구였을 뿐이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꺼내려면 막연한 서운함이 아니라 정확한 숫자가 필요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자발적으로 그의 성과급 일부를 내게 건넸다.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받은 몫이지만 그가 일에 전념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내 몫도 있었으니까. 육아와 가사노동의 가치를 공유하고 인정한 경험은 우리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동기 언니의 남편은 주말이나 명절에 휴일 근무를 하면 휴일수당을 받는다. 반대급부로 휴일에 아이를 돌보는 일은 자연스레 언니 혼자의 몫이다. 그래서 언니는 남편에게 '독박육아 특근수당'을 청구했다고 한다.

가사와 육아는 누군가의 시간과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한쪽이 휴일 근무로 돈을 벌 때 다른 한쪽은 돌봄으로 시간을 쓴다. 돈으로 보상받는 노동은 눈에 잘 띄지만, 보상 없이 이루어지는 노동은 쉽게 당연한 몫이 된다. 언니의 청구서는 그 당연함에 질문을 던진 셈이다.

JTBC <이혼숙려캠프> 25기에서 '공평 부부'로 소개된 한 부부도 육아 분담을 두고 부딪혔다. 아내는 반반을 말했고, 남편은 자신이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으니 똑같이 나누는 건 불공평하다고 했다. 같은 공평을 말하는데도 한쪽은 시간을, 다른 한쪽은 돈을 저울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어디까지가 공평일까.

어디까지가 공평일까

결혼 7년 차, 아이를 낳은 지 6년이 된 지금 내가 느끼는 공평은 숫자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계산에 넣을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서로의 몫을 셀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다.

부부의 공평에는 두 가지가 얽혀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무엇을 셀 것인가, 다른 하나는 어떤 마음으로 셀 것인가다. 앞의 것은 내용의 문제이고, 뒤의 것은 마음의 문제다.

부부가 셀 수 있는 것은 월급만이 아니다. 근무성적 평정에 따른 성과급과 승진이 있다. 단축근무로 줄어든 수당과 연금 가입 기간이 있고, 휴일에 일한 시간과 그날 아이를 본 시간이 있다. 한 사람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한 사람이 감당한 몫도 있다.

내가 배우자보다 월 100만 원을 덜 벌더라도, 가사와 육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동을 쏟고 있다면 어떨까.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면 비용이 들고, 내가 맡는 동안 배우자는 자신의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급여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기여가 우리 가정의 경제를 지탱하는 셈이다.

맞벌이가 아닌 경우, 월 급여 소득만으로 부부의 기여를 비교하는 것이 공평한 계산일까. 아니면 급여로 드러나지 않는 가치까지 세는 게 공평한 계산일까. 청구서를 내밀 때 비용만큼 중요한 건 마음이다. 속뜻은 대개 '내 몫을 돌려달라'보다 '나 힘든 거 좀 알아줘'에 가깝다.

알아달라는 마음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 마음이 '내가 더 힘들다'는 증명으로 흐르면 계산은 끝나지 않지만, '서로의 몫을 알아보겠다'로 흐르면 대화가 된다. 대화가 되느냐는 애초에 저울 위에 무엇을 놓고 계산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부가 함께 잘 살려면

 부부 사이의 공평은 기술이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부부 사이의 공평은 기술이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 miracleday on Unsplash

상대를 현관문 앞에 세워두고 돌아설 각오로 저울질할 것인지, 아니면 거실 식탁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저녁밥을 함께 먹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누가 더 힘들까'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저울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누구든 먼저 내민 저울은 이미 '내가 더 힘들고, 내가 더 손해'로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서로의 몫을 알아보고 인정하기 위해' 저울을 꺼내면 쓰임이 달라진다. 생활하면서 알게 모르게 기울어진 저울을 함께 고쳐나갈 수 있다. 물론 어디서부터 계산할지, 그 계산의 잣대가 공평한지는 서로 말해야만 안다.

서로가 생각하는 화폐의 가치도, 노동의 가치도 생각보다 꽤 다르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기여는 당연한 몫이 되고, 그 당연함이 쌓이면 한쪽은 희생했다고 느끼고 다른 한쪽은 비난받는다고 느끼게 된다.

광고 속 부부는 점심시간에 온 설치기사 덕에 연차를 아꼈다. 아니, 정확히는 삼성의 AI 구독 서비스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부부 사이의 공평은 기술이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각자 구독 중인 AI에게 누구 말이 맞는지 물어본들, 서로 다른 질문에는 서로 다른 답이 돌아올 수도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하는 순간이다.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닌, 너도 살고 나도 살자의 잣대로. 공평부부로 가는 첫 걸음은 누구의 청구서가 옳고 그르냐보다, 그 청구서에 무엇을 적을지 함께 이야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공평#공정#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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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워킹맘, 시민기자, 작가. 일상을 글로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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