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AI·반도체에 쏠린 매도세가 미국을 거쳐 한국을 덮쳤습니다. 10월 22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6.72% 급락했고 인텔, 마이크론, 엔비디아가 줄줄이 무너졌습니다. 23일 오전 코스피는 장중 4% 넘게 밀렸습니다. 그런데 방아쇠를 당긴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돈이었습니다. 메타는 매출이 예상을 웃돌았는데도 AI 투자 자금을 마련하려고 새 주식 클래스를 만들겠다고 밝히자 7% 떨어졌습니다. 같은 날 젠슨 황은 네오클라우드의 자본 부족을 언급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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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반도체에 쏠린 매도세가 미국을 거쳐 한국을 덮쳤습니다. 10월 22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6.72% 급락했고 인텔, 마이크론, 엔비디아가 줄줄이 무너졌습니다. 23일 오전 코스피는 장중 4% 넘게 밀렸습니다. 그런데 방아쇠를 당긴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돈이었습니다.
메타는 매출이 예상을 웃돌았는데도 AI 투자 자금을 마련하려고 새 주식 클래스를 만들겠다고 밝히자 7% 떨어졌습니다. 같은 날 젠슨 황은 네오클라우드의 자본 부족을 언급했고, 이란 전쟁 우려로 유가는 5월 이후 최고치로 뛰었습니다. 시장은 이제 AI 수요가 아니라 "AI 투자 자금을 누가 대느냐"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증시라고 그 여파를 피해가는 것은 아닙니다. AI와 반도체 기업이 모인 상하이 과창판은 7월 고점 대비 40% 내려앉았고 23일 오전 상하이지수는 3,600선마저 내줬습니다. 여기에 데이터센터에 대한 혐오와 일자리 대체에 대한 불안까지 겹치면서 AI 버블론과 위협론이 세계 곳곳에 번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누구나 버블을 떠올리고 AI 시장에서 발을 빼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오히려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은 나라가 있습니다. 폭락 하루 전인 10월 21일 중국은 이 사태를 예고라도 하듯이 <과학기술 혁신과 산업 혁신의 심층 융합 추진에 관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모두가 속도를 줄이는 코너에서 전력 질주해 앞지르겠다는 후발주자의 승부수입니다.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말로 '커브길 추월(만도초차, 弯道超车)'입니다. AI 버블론과 위협론이 만연한 가운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다는 나라, 우리의 바로 옆 나라 중국입니다.
국가 과제를 기업에 넘기고 연구와 성과를 함께 가져가게 한다
2026년은 중국이 15번째 5개년 계획을 시작한 첫해이고 이제 그 한 해를 결산하는 시기입니다. 연초에는 큰 방향을 밝히는 추상적인 발표가 많았습니다. 이번 <의견>은 그 계획을 남은 4년 동안 어떻게 집행할지 선언한 문건입니다.
한국에 빗대면 정부가 "임기 안에 이것만은 반드시 해내겠다"며 국정과제 맨 앞줄에 올린 과제를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실이 함께 서명해 전 부처와 지방정부에 실행 지침으로 내려보낸 셈입니다. 이번 <의견>이 바로 그런 무게입니다. 그런데 이 문건에는 예산 숫자가 없습니다. 대신 돈과 기술이 흐르는 배관을 바꿉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연구개발은 국책 연구기관이 성과를 내면 산업이 나중에 가져다 쓰는 구조였습니다. <과학기술부>는 이를 "먼저 기술을 개발한 뒤 산업 전환을 고민하는 관성"이라 부르며 이번에 깨겠다고 밝혔습니다. 해법은 기업을 과학기술 혁신 주체로 지위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산업화 목표가 분명한 국가 과학기술 과제는 원칙적으로 기업이 주도해 실시하고, 그 성과의 산업화까지 기업이 이끕니다.
혁신의 중심을 연구소에서 기업으로 옮기고, 국가 예산도 기업에 주며 연구와 성과를 한 주체에 묶겠다는 것입니다. 물이 필요한 공장에서부터 관을 깔겠다는 뜻입니다. 발표 시점도 의미심장합니다. 세계 시장이 AI 버블을 의심하던 바로 그 주에 나왔습니다. 중국의 AI 시간표는 주식 시장이 아니라 5개년 계획이 정한다는 신호입니다.
3대 혁신 - 막힌 곳은 뚫고, 없는 것은 만들고, 낡은 것은 바꾼다
<의견>이 그린 혁신 지도는 세 갈래입니다. 첫째는 막힌 길을 뚫는 일입니다. 반도체, 공작기계, 정밀 계측기기, 첨단 소재는 아직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분야입니다. <의견>은 이 분야에서 사활을 걸고 '결정적 돌파(决定性突破)'를 이뤄내라고 다그칩니다. 둘째는 아직 없는 시장을 앞서 만드는 일입니다. 양자, 핵융합,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피지컬 AI(Physical AI), 6G를 미래산업으로 지정하고, 산업화와 상용화를 앞당기겠다고 밝혔습니다. 셋째는 낡은 것을 바꾸는 일입니다. 제조업 설비를 대대적으로 교체하고, 종자산업과 농기계까지 첨단기술로 개조합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인공지능+'의 자리입니다. AI는 미래산업 목록이 아니라 셋째 갈래, 즉 전통산업 개조 항목의 마지막 줄에 들어가 있습니다. 중국은 AI를 반도체나 양자처럼 따로 키울 업종으로 보지 않습니다. 공장과 농장, 병원 어디에나 깔리는 상수도로 봅니다. 상수도 회사 주가가 떨어졌다고 수도관 공사를 멈추는 나라는 없습니다. 미국 시장이 "AI가 언제 돈을 버는가"를 묻는 사이, 중국은 "AI가 언제 공작기계와 농기계에 흘러드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혁신과 산업 간 체인을 빈틈없이 조인다
<의견>이 내세운 첫 번째 중점 과제는 '혁신체인과 산업체인의 빈틈없는 연결'입니다. 중국은 연구에서 산업까지를 하나의 체인으로 보고 마디마다 생기는 빈틈을 제도로 메웁니다. 출발점은 과제 설계입니다. 국가 과학기술계획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기업을 참여시켜 산업화를 지향하고, 연구개발 목표와 산업화 목표를 함께 평가받습니다. 공장을 지을 때 연구실도 같이 짓는 셈입니다.
다음은 성과의 소유권입니다. 중국에서 대학이나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자가 직무상 만든 특허와 기술은 원래 소속 기관의 것, 즉 국유자산이었습니다. <의견>은 그 성과의 소유권 일부 또는 장기 사용권을 연구자 개인에게 주는 개혁을 심화합니다. 국유자산으로 묶여 잠자던 기술을 깨워 연구자의 손에 쥐여 주는 조치입니다. 기술을 만든 사람이 그 기술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시장으로 들고 나갈 이유가 생깁니다.
마지막은 죽음의 계곡을 지나는 방법입니다. <개념검증센터>와 <중간시험 플랫폼>을 짓고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혁신 제품을 우선 시험하고 먼저 사용하도록 합니다. 여기에 신기술과 신제품이 쓰일 응용 시나리오를 국가가 직접 열어 줍니다.
중국은 이 방식에 익숙합니다. 2009년에는 10개 도시에 신에너지차를 1000대씩 먼저 굴려 보는 '십성천량(十城千辆)' 사업으로 전기차 시장의 문을 열었습니다. 지난해 발표한 '인공지능+' 행동 방안에서는 2027년까지 AI 단말기와 에이전트 보급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시장이 기술을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기술이 쓰일 자리를 먼저 깔아 주는 것이 중국식입니다.
기업이 앞장서고, 자본이 군량을 대며, 국가가 진을 친다 — 미래 국가 제체의 역할 분담
마지막 그림은 전진 배치입니다. 먼저 기업이 선봉대가 됩니다. 산업 응용 목표가 분명한 국가 과제는 원칙적으로 기업이 주도하고 대학의 몫이던 국가자연과학기금도 민영 기업에 시범 개방합니다.
자본은 후발대로 군량을 조달합니다. 정부와 국유 벤처기금은 이제 막 문을 연 작은 스타트업, 그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10년이 걸리는 하드테크에 돈을 대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국유 펀드 담당자들은 투자에 실패하면 '국유자산 유실'로 감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미 다 자란 기업에만 안전하게 투자했습니다.
<의견>은 성실하게 직무를 다했다면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국유기업이 대학·연구기관과 함께 쓴 연구개발비도 성적표에서 비용이 아니라 이익으로 되돌려 인정합니다. 연구에 돈을 쓸수록 경영 평가가 나빠지던 구조를 뒤집은 것입니다.
국가는 방어진을 칩니다. 미래 국가 청사진 아래 과학기술·산업·금융·교육·인재 정책을 부서간 벽을 허물고 한 테이블에서 조정하고 지방이 먼저 시행해 보도록 길을 연 후 대도시가 발전 확산시킵니다.
10월 22일 미국 시장이 던진 질문은 "AI 투자 자금을 누가 대느냐"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주주와 채권자가 그 리스크를 관리합니다. 중국은 그 위험을 국가 자본이 받치도록 배관을 다시 깔았습니다. 모두가 속도를 줄이는 커브길에서 중국이 가속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서구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이를 과잉 투자라 비판하며 차이나 붕괴론을 예측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분기 실적과 주주 수익률이라는 잣대로 5개년 계획과 국가 자본으로 움직이는 다른 체제를 분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중국식에도 청구서는 따릅니다. 그럼에도 시장이 흔들릴 때 누가 위험을 받칠지 정해 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거리는 이번 코너를 돌고 나면 더 벌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 격차가 드러나는 시점은 어쩌면 올해 연말이 될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임선영씨는 중국 칭화대 전산언어학 석사를 마친 중국경제전문가이며 의 저자입니다. 이 글은 본인의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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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의 중국 AI 미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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