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2026 세계번역가대회’“번역은 산출물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번역가의 ‘윤리, 책임’ 높아질 것“자본주의 사회서 번역도 상품”AI 번역 막기 어려울 수도사전 이미지. 언스플래쉬출판계가 연이어 인공지능(AI)의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해 생성형 AI를 이용해 순식간에 대량의 책을 만들어 유통한 출판사가 논란이 되며 ‘딸깍 출판’이라는 말이 유행했다면, 올해···
본문
‘2026 세계번역가대회’
“번역은 산출물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
번역가의 ‘윤리, 책임’ 높아질 것
“자본주의 사회서 번역도 상품”
AI 번역 막기 어려울 수도
사전 이미지. 언스플래쉬
출판계가 연이어 인공지능(AI)의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해 생성형 AI를 이용해 순식간에 대량의 책을 만들어 유통한 출판사가 논란이 되며 ‘딸깍 출판’이라는 말이 유행했다면, 올해는 ‘딸깍 번역’이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소비자에게 공지 없이 AI 번역을 활용한 고전문학 애플리케이션 ‘책도둑’은 논란이 커지자 지난 7월 서비스를 중지했다. 다양한 분야에 AI가 활용되는 상황에서 책이라는 상품을 만드는 제작자도, 이를 구매하는 소비자도 AI를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출판은 AI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까.
번역가들이 이 같은 고민을 나누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 28일 한국문학번역원 주최로 서울 강남구 그랜드 머큐어 임피리얼 팰리스 메라크홀에서 열린 ‘2026 세계번역가대회’에서다.
참석자들은 먼저 AI 시대, 번역가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재사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간이 기계보다 ‘번역을 잘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번역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번역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빈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 교수는 “번역가에게 원문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글을 옮기며 ‘이 작가는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등 여러 질문을 한다. 이 과정에서 원문과 번역문 사이에는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이러한 지연은 비효율성이 아니라 윤리적 숙고가 발생하는 시간이다. 번역가는 자신이 누구의 말을 옮기는지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내린 결정에 책임질 수 있는지 되묻는다. 인간 번역가의 자리는 바로 여기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문지혁도 “번역을 그저 정보의 이전이나 의미의 치환, 문장의 재배열로만 이해한다면 AI 번역은 이미 강력한 경쟁자이고, 앞으로는 더욱 압도적인 지배자가 될 것”이라면서도 “번역을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 응답하며, 다시 그 응답에 책임지는 행위로 이해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때 번역은 단순한 산출물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AI 시대일수록 단순한 번역 행위보다 번역가의 번역물에 대한 윤리성과 책임이 강조될 것이라는 뜻이다.
지난 7월 25일 전자책 구독 서비스 앱 ‘책도둑’ SNS에 올라온 입장문. 책도둑지기 X 캡처
지난 7월 30일 전자책 구독 서비스 앱 ‘책도둑’ SNS에 올라온 입장문. 책도둑지기 X 캡처
번역가의 직업적 윤리와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번역이 책이라는 상품을 만드는 과정의 일부라는 점에서 AI 번역의 시장 진출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문지혁 작가는 “우리는 인간 번역의 당위와 존엄을 설명할 수 있지만, 일반 독자나 시장은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번역을 판단하지 않는다”며 “텍스트 앞에서 독자는 ‘읽히는가, 자연스러운가, 정확한가, 빠른가, 가격은 어떤가’를 묻는다”고 말했다. 청중으로 참여한 한 번역가도 “번역은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가 통하는 사회”라며 “학부생에게 만 원 주고 번역하라고 하면 만 원짜리 번역이 나오고, 번역가에게 100만원을 주고 번역하라고 하면 100만원짜리 번역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번역 시장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안수연은 근래 ‘MTPE’(machine translation post-editing)’로 불리는 기계 번역 후 인간 편집 방식이 많이 쓰이는데, 이는 번역가에게 일반적인 전문 번역료보다 적은 돈을 지급하면서, 번역가 자신이 생성하지 않은 오류에 대해 책임을 지게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결정의 중심에는 도구가 아닌 번역가”가 있어야 한다며 AI 도구를 사용하되 그 중심에 인간을 두는 “인간 중심 기계 번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