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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한 미니언즈인 줄 알았는데... 한국 교육에 날린 돌직구

천진한 미니언즈인 줄 알았는데... 한국 교육에 날린 돌직구

요약

1920년대 할리우드는 무성영화의 황금기였다. 대사도 녹음된 음악도 없이 오직 몸짓 하나로 세계를 사로잡던 시대. 최고의 악당을 섬기려 세상을 떠돌던 미니언들이 우연히 그 촬영장에 굴러떨어진다. 말이 필요 없는 존재에게 무성영화만큼 완벽한 무대는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와 넘어지고 부딪히는 몸개그만으로 그들은 순식간에 스크린의 스타가 된다. 그러나 전성기는 짧았다. 영화에 소리가 들어오는 순간, 미니언들의 언어, 곧 인간의 말이 아닌 그 옹알이가 도…

본문

 영화 <미니언즈 & 몬스터즈> 스틸컷
▲영화 스틸컷유니버설 픽처스
1920년대 할리우드는 무성영화의 황금기였다. 대사도 녹음된 음악도 없이 오직 몸짓 하나로 세계를 사로잡던 시대. 최고의 악당을 섬기려 세상을 떠돌던 미니언들이 우연히 그 촬영장에 굴러떨어진다. 말이 필요 없는 존재에게 무성영화만큼 완벽한 무대는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와 넘어지고 부딪히는 몸개그만으로 그들은 순식간에 스크린의 스타가 된다.

그러나 전성기는 짧았다. 영화에 소리가 들어오는 순간, 미니언들의 언어, 곧 인간의 말이 아닌 그 옹알이가 도리어 걸림돌이 된다. 어제까지 세상을 웃기던 재주가 오늘은 아무 값도 나가지 않는다. 그들을 스타로 만든 바로 그 말없음이, 이제 그들을 스크린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절망한 미니언 무리는 늘 하던 대로 움직인다. 자신을 다시 써 줄 더 크고 안전한 주인을 찾아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빅 보스를 향해 줄지어 달려가는 그들이 실제로 찾는 것은 폐물이 된 자신을 그래도 사 줄 새 시장이다. 소리 하나에 왕좌가 뒤집힌 것이다.

카메라를 든 제임스

 영화 <미니언즈 & 몬스터즈> 스틸컷
▲영화 스틸컷유니버설 픽처스
세 미니언만은 그 대열에서 이탈한다. 그림을 사랑하고 영화 만들기에 미쳐 있는 외눈박이 제임스, 언제나 그 곁을 지키는 헨리, 그리고 큰 덩치로 수어를 쓰는 청각장애 미니언 에드. 소리가 세상을 정복한 바로 그 순간에 소리 없이 손으로 말하는 존재가 이야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에드가 쓰는 수어야말로 유성영화가 밀어내려는 바로 그 무성의 언어다. 그리고 그는 밀려나지 않는다. 함께 이탈한 두 친구가 그를 대열 밖으로 밀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재주가 쓸모없어진 자리에서 미니언들 앞에는 갈림길이 놓인다. 무리로 돌아가 새 빅 보스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카메라를 들 것인가. 제임스는 후자를 택한다. 기존 스튜디오가 정해 주는 배역에 머무는 대신에 자기 손으로 괴수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 선택을 알아본 유일한 어른이 감독 맥스다. 그는 제임스의 기획 속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카메라를 건넨다. 다독이는 대신 찍을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밀려난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이 격려가 아니라 세상을 담을 도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영화 <미니언즈 & 몬스터즈> 스틸컷
▲영화 스틸컷유니버설 픽처스
제임스가 끝내 자기 영화를 완성하고 금빛 바나나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던 동력은 개인의 천재성이 아니었다. 엉뚱함을 결함으로 몰지 않고 우정을 나눈 헨리, 소리 없이 끝까지 곁을 지킨 에드, 카메라를 내어준 맥스. 그를 여기까지 밀어 올린 건 이 곁들이었다. 창의는 홀로 살아남지 못한다. 그것을 '방해물'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읽어 주는 작은 원이 함께 있을 때, 겨우 도태를 면한다.

이 원을 이룬 이들이 누구인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리가 속도와 효율만 따졌다면 남과 다르게 보는 제임스도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에드도 진작 걸림돌로 솎여 나갔을 것이다. 창의를 품는 원은 가장 강한 자들이 아니라 밀려나기 쉬운 이들이 서로의 다름을 알아볼 때 생겨난다.

그리고 창의에는 대가가 따른다. 제임스가 리얼리티를 위해 끌어들인 진짜 괴물 아이린은 카메라 앞에 서기를 거부하고 도리어 세상을 집어삼키려 든다. 창작의 야심이 감당 못 할 사고를 부른 것이다. 이 재앙을 되돌리는 데는 셋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떠났던 동료들까지 새로운 빅 보스 도트와 함께 돌아오고, 미니언들은 너나없이 하나가 되어 제임스가 부른 난장을 함께 감당한다. 창의를 끝내 살려 내는 것은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그 창의가 저지른 사고까지 함께 짊어지는 여럿이다.

제임스가 한국의 교실에 떨어졌다면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상상 하나. 제임스가 한국의 교실에 떨어졌다면 어땠을까. 우리 사회에서 자본이라는 빅 보스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섬겨야 하는 절대적 주인이다.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이고 돈이 되는 직업을 향해 아이들은 학원가를 뺑뺑이 돈다. 그 획일의 대열에서 엉뚱한 상상으로 효율을 떨어뜨리는 제임스는 '산만한 아이', '부적응자', '무리의 걸음을 늦추는 걸림돌'로 분류되어 조용히 밀려났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미니언들처럼 매체가 바뀔 때마다 더 크고 안전한 새 빅 보스를 향해 줄지어 달린다. 입시가 개편될 때도, 산업이 재편될 때도, 이제 AI가 숙련의 값을 다시 매기는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끝없는 경쟁 속에서 정답만 제출하도록 강요받는 사이, 아이들의 순수한 관점은 깎여 나간다. 그렇게 창의를 빼앗긴 채 어른이 된 뒤에야 사회는 다시 "창의적 인재가 되라"고 몰아세운다. 어릴 때부터 날개를 접어 두도록 길들여 놓고, 다 커서 왜 날지 못하느냐 따지는 격이다. 정작 나는 법은 누구도 일러 주지 않으면서.

영화가 끝나고 씁쓸한 부러움이 남는다. 제임스 곁에는 카메라를 쥐여 준 맥스와, 끝까지 함께한 헨리와 에드가 있었다. 우리에게 그런 울타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K-컬처가 증명하듯, 이 사회의 창의적 역량은 이미 세계를 흔든다. 다만 그 울타리는 대개 대열에서 끝까지 버텨 낸 소수에게, 그것도 한참 늦게야 열린다. 교실의 모든 제임스에게 처음부터 주어지는 기본값은 아니다. 격변과 도태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경주로가 아니라 밀려나기 쉬운 재능일수록 일찍 붙들어 주는 작은 원이다. 그 원을 언제, 누구에게 열 것인가. 그 선택이 결국 다음 세대의 창의가 살아남을지를 결정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4indie)에도 실립니다. 미니언즈앤몬스터즈 피에르코팽 일루미네이션 애니메이션 미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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