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좁은 주차장에서 사고를 냈다. 보험사가 알아서 처리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보험사에서 먼저 걸려온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 상담사였다. "본인 확인을 해야 사고 처리가 진행됩니다." 거부했다. 사람과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AI 상담원은 아랑곳없이 자기 할 말만 쏟아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정해진 절차로 되돌아왔고, 결국 사람과는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동의해야만 사고 처리가 진행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거부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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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주차장에서 사고를 냈다. 보험사가 알아서 처리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보험사에서 먼저 걸려온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 상담사였다. "본인 확인을 해야 사고 처리가 진행됩니다."거부했다. 사람과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AI 상담원은 아랑곳없이 자기 할 말만 쏟아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정해진 절차로 되돌아왔고, 결국 사람과는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동의해야만 사고 처리가 진행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거부할 권리는 형식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불쾌감을 넘어 서늘함을 느꼈다. '경영의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노동의 온기를 삭제하고, 선택의 자유마저 알고리즘의 뒤로 숨겨버리는 이 시대의 풍경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적인 관계를 서둘러 폐기하고 있다. 기업이 상담원 한 명, 신입 사원 한 명의 자리를 지워나갈 때, 그 끝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서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온기는 퇴화한다.
AD 실제로 그 우려는 통계로 확인된다. 국가통계포털(2026.6.29)에 따르면,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2025년 신규 박사 학위 취득자 조사'에서 박사 무직자 비율이 33.3%로 2014년 조사 이래 처음 30%를 넘었다. 30세 미만 청년 박사는 51.1%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한국은행(2025.10)도 챗GPT 출시 이후 3년간 IT·출판·전문서비스업 등 주요 업종에서 청년 고용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AI 확산이 신입 일자리 축소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통계청의 숫자는 건조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청년들의 삶은 참담하다. 2026년 2월 기준, '쉬었음' 청년 48만 5천 명. 이 숫자는 그냥 통계가 아니라, 사회가 기회라는 전화를 먼저 끊어버린 청년들의 숫자다. 효율이 낳은 그림자다. 각자는 그저 효율을 따랐을 뿐인데, 그 효율들이 모여 청년 전체의 사회 진입로를 막아버린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제는 청년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된 셈이다.
마이스터고인 우리 학교는 2학기가 시작되면 현장실습을 내보내고, 대부분 그 실습이 취업으로 이어진다. 서류 전형에 합격한 아이들을 모아 기업별 면접 특강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2년째 취업지원부장을 맡은 교사를 만날 때마다 듣는 말은 똑같다. "아이들 취업이 어렵습니다." 기업의 취업의뢰가 현격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그 줄어든 숫자 뒤에는, 오늘도 합격 문자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쥐고 있을 우리 아이들이 있다.
기계가 던질 수 없는 질문, 학교가 길러야 할 시민
34년간 직업계고 현장을 지켜온 교장으로서 나는 매일 묻는다. 기술은 과연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AI 기계는 '가장 확률 높은 답'을 내놓지만, 그것이 '옳은 답'인지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 고민을 하는 것이 사람이고, 그 고민을 할 줄 아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 그것이 교육이 AI에게 내줄 수 없는 마지막 자리다.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연대의 감각, 그것이야말로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노동이다.
학교는 기계의 노예가 아닌 공동체의 설계자를 길러내야 한다. 알고리즘에 순응하는 부속품이 아니라, 시스템을 질문하고 수정할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일. 이것이 내가 34년 동안 교단에서 놓지 않았던 교육의 본질이다.
다시 그날의 통화로 돌아가본다. "AI 말고 사람과 통화하고 싶어요." 끝내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일방적인 통화는 단지 보험 처리를 위한 요구가 아니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선택지를 빼앗긴 모든 이들을 대신한, 작지만 절박한 외침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더 빠른 알고리즘이 아니라, 기계에게는 효율을, 사람에게는 온기를 돌려주는 지혜다. 청년의 고립은 그들의 패배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먼저 전화를 끊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청년실업률#효율#AI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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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신고 네이버 채널구독 다음 채널구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글 오성훈 (garachim67) 내방
서울로봇고등학교 교장. 『되풀이되는 비극, 따개비 현장실습』, 『디지털 대전환 시대 직업계고 미래는』 등 직업계고 학생들의 삶과 미래를 응원하는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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