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1990년대 후반을 기억하는가. 인터넷 검색창이 처음 열렸을 때 세상은 요란했다. '검색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뤘고, '인터넷 정보검색사'라는 국가공인 자격증이 유망 직종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지금 그 자격증과 전문가들은 어디로 갔는가. 구글과 네이버를 켜면서 학원 강의를 떠올리는 이는 아무도 없다. 초등학생조차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탐색한다. 지난 6일 마곡코엑스에서 열린 (사)한국코치협회 '제23회 코칭컨페스티벌'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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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을 기억하는가. 인터넷 검색창이 처음 열렸을 때 세상은 요란했다. '검색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뤘고, '인터넷 정보검색사'라는 국가공인 자격증이 유망 직종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지금 그 자격증과 전문가들은 어디로 갔는가. 구글과 네이버를 켜면서 학원 강의를 떠올리는 이는 아무도 없다. 초등학생조차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탐색한다.
지난 6일 마곡코엑스에서 열린 (사)한국코치협회 '제23회 코칭컨페스티벌' 연단에 선 정재승 카이스트(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객석을 가득 메운 코치들을 향해 서늘하면서도 통렬한 일성을 던졌다.
AD "5년 안에 지금의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다 사라질 겁니다. 90년대 그 많던 인터넷 전문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또다시 AI에게 질문(프롬프트) 잘 던지는 기술을 가르치고 자격증을 발급하느라 분주하지만, 정 교수는 이러한 기술적 요령은 머지않아 무용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술을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기 전에, 인간이 왜 질문해야 하는지 그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강연의 문을 열었다.
1.4kg 뇌의 본능, 정답보다 강한 '호기심의 도파민'
정 교수는 "인간의 뇌는 원래 질문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고 짚었다. 컴퓨터나 로봇은 입력(Input)을 주면 처리(Process)를 거쳐 출력(Output)을 내놓는 기계적 수동성에 머물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 스치는 냄새 하나, 마시는 물 한 모금에도 "이게 무슨 맛이지?", "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까?" 끊임없이 세상을 능동적으로 탐색한다. 정 교수는 뇌과학에서 이를 '액티브 샘플링(Active Sampling)'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교수는 "단서를 찾아 헤매다 스스로 답을 얻었을 때, 뇌는 도파민을 뿜어내며 쾌감을 선물한다"며 "지식 그 자체보다 궁금증을 품고 답을 찾아가는 사유의 과정 자체가 인간에게는 가장 완벽한 내적 보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진단한 한국 사회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였다. 정 교수는 "우리의 입시와 정규 교육은 50분 동안 15문제를 실수 없이 풀어내는 훈련만을 강요해 왔다"며 "세상이 주입하는 정답을 외우느라 스스로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지름길(휴리스틱)의 함정과 알파고가 남긴 경고
강연은 인간의 인지적 취약점에 대한 경고로 이어졌다. 정 교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복잡한 사유를 건너뛰고 손쉬운 지름길(휴리스틱·Heuristics)을 택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무리에서 가장 똑똑한 리더를 맹목적으로 따랐듯, 현대인들이 척척 답을 내놓는 챗GPT를 무비판적으로 신뢰하며 심판자이자 리더로 모시기 시작했다는 진단이다.
정 교수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회고하며 기계에 대한 맹종이 낳을 비극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초기 알파고(알파고 리)에게 졌을 때만 해도 이세돌 9단은 '복기(復棋)'를 할 수 있었다. "50수 전의 그 선택이 패착이었구나"라며 실수를 해석하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기보를 전혀 보지 않고 스스로 수억 번의 바둑을 두며 승률만을 계산한 '알파고 제로' 앞에서 복기는 불가능해졌다. 언제부터 졌는지, 왜 졌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기계는 오직 '승률이 가장 높은 자리'에 돌을 놓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오늘날 많은 프로 기사들이 왜 그 자리에 돌을 놓아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AI의 수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현실을 전하며, 그 결과 기사 개개인의 독창적인 개성과 '기풍(棋風)'이 실종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는 바둑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과 일상에서도 AI가 지시한 대로 기획서를 쓰고 마케팅을 펼치면 성공 확률은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블랙박스에 갇혀 알 수 없다. 정 교수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기계는 결과를 설명하지 않으며, 법적·윤리적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알려고 애쓰는 노력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따져 묻지 않은 채 기계의 답을 따르다 사고가 터지면, 그 책임은 오롯이 '실행' 버튼을 누른 인간이 져야 합니다."
"AI에게 먼저 묻지 마라, 당신의 생각을 먼저 세워라"
정 교수는 AI 시대에 인간이 주체성을 지키기 위한 행동 원칙으로 "AI에게 묻기 전, 반드시 자기 판단을 먼저 거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든 에세이든, 처음부터 AI에게 "써줘"라고 맡겨버리면 뇌는 기계가 내놓은 매끈한 프레임에 갇혀 더 이상 독창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것이 바로 옆자리 동료가 쓴 것인지 기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는 '무색무취의 80점짜리 글'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그는 "나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나라면 어떤 논리로 글을 쓸까를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해 초안을 잡아야 한다"며 "그 후 비판적인 시선으로 AI와 30번, 50번씩 대화를 주고받으며 집요하게 벼려내는 사람만이 80점을 넘어 97점짜리 탁월한 통찰에 도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재승 교수는 AI 시대 코치의 첫 역할은 내담자의 막연한 고민을 자기 질문으로 바꾸도록 돕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질문이 실종되어 가는 시대, 사람과 마주 앉는 코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재승 교수가 객석의 코치들에게 건넨 화두는 장내를 깊은 침묵 속으로 이끌었다.
"챗GPT에게 '코칭 잘하는 법 알려줘'라고 물어보면 1초 만에 완벽한 매뉴얼을 쫙 정리해 줄 겁니다. 경청의 단계, 개방형 질문의 기술까지 기가 막히게 뽑아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 기계를 두고 여러분을 찾아올까요?"
정 교수는 그 이유를 인간의 '실패 경험'에서 찾았다. 기계는 실패해 본 적이 없으며, 피눈물 흘리며 밤을 지새운 적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의 무게에 주저앉아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정형화된 기술주의 코칭에 일침을 놓았다.
"세상에 정해진 '좋은 질문'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 공식이 있었다면 세상은 이미 천국이 되었을 겁니다. 코치의 첫 번째 역할은, 내담자가 품고 있는 막연한 고민과 방황을 '자기 삶을 향한 선명한 질문'으로 바꾸도록 돕는 일입니다."
정 교수의 이 발언은 강연장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묵직한 물음을 남긴다. 사람들이 기계 대신 사람을 찾아와 마주 앉을 때, 그들이 진짜 바라는 것은 매끄러운 이론 매뉴얼이 아닐 것이다. 그 길을 먼저 걸어가며 무수히 넘어지고 깨져본 사람, 숱한 실패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고 버텨낸 사람이 건네는 '주름진 경험과 떨리는 목소리'다.
기계가 모든 정답을 헐값에 찍어내는 시대다. 그러나 매끈한 정답 대신 타인의 혼란스러운 곁에 기꺼이 머물러주고,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묵묵히 동행하는 인간의 온기만큼은 그 어떤 초거대 AI도 대신할 수 없다. 기계의 시대, 스스로 질문을 품고 타인의 질문을 깨우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끝내 인간으로 남기 위한 가장 따뜻하고 절실한 안전망이다.
#코칭#코치#정재승#마곡코엑스#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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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신고 네이버 채널구독 다음 채널구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 박정길 (allseemsgood) 내방NLP전략연구소 소장이자 숭실대학교 겸임교수인 박정길 소장은 사람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성장을 이끌어내는 데 깊은 통찰력을 지닌 교육 전문가입니다. NLP 트레이닝과 코칭을 통해 개인과 조직이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돕고, 기업, 공공기관, 대학교, 청소년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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