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에는 '검은 국물(Black Broth)'이라는 유명한 음식이 있었다. 돼지고기와 돼지 피, 식초, 소금 등을 넣어 끓인 국물이었다. 스파르타의 남성 시민들이 함께 모여 식사할 때 자주 먹던 음식이었다. 스파르타는 성인 남성 시민 모두가 전쟁이 나면 군인으로 싸워야 하는 병영국가였다. 남자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집단생활을 하며 군사훈련을 받았고, 성인이 된 뒤에도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의무였다. 이를 '시시티아(Sys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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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역사에는 언제나 노래가 있었다. 사람들은 전쟁터로 떠나며 노래했고, 포화 속에서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노래했다. 승리를 기뻐하며 부른 노래도 있었고, 죽은 전우를 기억하거나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부른 노래도 있었다. 때로는 전쟁과 아무 관계 없이 태어난 노래가 뜻밖의 사건과 만나 전혀 다른 의미를 얻기도 했다. ‘War & Song’은 그 이야기들을 따라간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노래 속엔 미처 알지 못했던 전쟁의 역사가 숨어 있다.[편집자말] |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에는 '검은 국물(Black Broth)'이라는 유명한 음식이 있었다. 돼지고기와 돼지 피, 식초, 소금 등을 넣어 끓인 국물이었다. 스파르타의 남성 시민들이 함께 모여 식사할 때 자주 먹던 음식이었다.
스파르타는 성인 남성 시민 모두가 전쟁이 나면 군인으로 싸워야 하는 병영국가였다. 남자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집단생활을 하며 군사훈련을 받았고, 성인이 된 뒤에도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의무였다. 이를 '시시티아(Syssitia)'라고 불렀다. 스파르타인들은 함께 밥을 먹으며 검소한 생활을 익히고, 전쟁터에서 생사를 함께할 전우들과 친분을 쌓았다. 검은 국물은 이런 공동식사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에게는 이 음식이 영 입맛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고대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는 어느 외국 왕이 스파르타 요리사를 불러 검은 국물을 만들어 보게 했다는 일화를 전한다. 국물을 맛본 왕이 실망하자 요리사가 대답했다.
"이 국물의 참맛을 알려면 먼저 에우로타스강에서 목욕을 하셔야 합니다."
에우로타스강은 스파르타를 흐르는 강이다. 스파르타 사람들처럼 고된 훈련을 하고 땀을 흘려야 이 음식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
스파르타인들이 일부러 음식에 쓸개즙을 넣어 맛없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기록은 없다. 검은 국물은 고통을 견디기 위한 음식이라기보다 검소한 생활과 공동체의 결속을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군대와 음식의 관계는 그만큼 오래됐다. 나폴레옹의 말로 널리 알려진 "군대는 위장(胃腸)으로 행진한다"는 격언도 병사들을 먹이는 일이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하루 세끼를 제대로 챙겨 먹기란 쉽지 않았다. 병사들은 돌덩이처럼 딱딱한 건빵을 씹거나 차가운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똑같은 음식을 몇 날 며칠 먹다 보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질리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노래를 불렀다. 건빵을 저주하고, 형편없는 커피를 비웃었으며, 통조림을 삼키는 일이 적과 싸우는 것보다 더 용감하다고 농담했다. 전쟁터의 이런 '밥 타령'에는 장군들의 회고록이나 공식 전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병사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건빵아, 제발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북군과 남군은 수십만 병력을 동원했다. 철도와 증기선이 연일 전선으로 물자를 실어 날랐지만, 병사들에게 매일 신선한 빵과 고기를 공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시 북군 병사들의 대표적인 식량이 '하드택(Hardtack)'이었다. 밀가루와 물, 소금으로 반죽해 수분이 거의 남지 않도록 구운 군용 건빵이다.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운반하기도 편했지만, 문제는 너무 딱딱하다는 것이었다.
병사들은 하드택을 '철판 크래커(Sheet-iron crackers)', '이빨 파괴자(Tooth dullers)'라고 불렀다. 이를 먹으려면 소총 개머리판이나 돌로 내리쳐 가루를 낸 뒤, 흙탕물 같은 커피에 몇 시간 동안 불려 죽처럼 넘기거나 베이컨 기름에 튀겨 딱딱함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보급 창고에 방치된 상자를 열면 밀 바구미와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병사들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꼴을 보지 않으려고 밤에 촛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건빵을 씹기도 했다.
결국 건빵은 노래의 주인공이 됐다. 북군 병사들이 부른 <하드 택 컴 어게인 노 모어 Hard Tack Come Again No More> 혹은 <하드 크래커스 컴 어게인 노 모어 Hard Crackers Come Again No More>, 우리말로 '건빵아,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라는 노래였다.
"우리 막사 문가에서 굶주린 탄식 소리 들리네. 딱딱한 건빵을 씹다 이가 부러지는 비명이라네. 슬픔의 노래가 우리 텐트 주위를 맴도나니. 오, 건빵이여! 제발 다시는 오지 마라!"
노래는 막사 주변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탄식과 딱딱한 건빵을 씹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묘사한다. 후렴에서는 건빵이 제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빈다.
원곡은 미국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가 1854년 발표한 <하드 타임스 컴 어게인 노 모어 Hard Times Come Again No More>(힘든 시절이여 다시 오지 마라)였다. 어려운 시절이 다시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애잔한 노래였지만, 병사들은 가사를 바꿔 지긋지긋한 건빵을 원망했다.
*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음악을 재현하는 2nd South Carolina String Band가 연주한 < Hard Crackers Come Again No More >. 스티븐 포스터의 < Hard Times Come Again No More >를 개사한 노래로, 딱딱한 군용 건빵에 시달리던 병사들의 불평을 담았다.
이 노래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서 포병으로 복무했던 존 D. 빌링스는 1887년 출간한 회고록 <하드택 앤드 커피 Hardtack and Coffee>(건빵과 커피)에서 1861년 아이오와 제1보병연대 병사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당시 병사들이 건빵을 원망하는 노래를 부르자 지휘관 너새니얼 라이언 장군이 식단을 바꾸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 나온 음식은 옥수수가루로 만든 죽이었다. 병사들은 이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노래 가사를 다시 고쳤다. 이번에는 건빵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건빵이 싫어서 노래를 불렀다가 결국 건빵을 다시 달라고 노래하게 된 것이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먹을거리를 선택할 여지가 얼마나 적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연이다.
남군의 땅콩 타령
남북전쟁에서 음식에 관한 노래는 건빵 타령만이 아니었다. 남군 병사들이 불렀던 노래 <Goober Peas>(구버 피스)는 땅콩을 소재로 삼았다. '구버(Goober)'는 미국 남부에서 땅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노래에는 길가에 앉아 삶은 땅콩을 먹는 병사들이 등장한다.
"모닥불 가에 둘러앉아 땅콩을 까먹네. 아침에도 땅콩, 점심에도 땅콩, 저녁에도 땅콩뿐. 저 언덕 너머에서 대포를 쏴대도 총을 쏠 힘도 없는 우리는 멍하니 땅콩만 까먹네."
남북전쟁 이전 미국 남부에서 땅콩은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는 작물이었다. 주로 흑인 노예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여겨졌으며, 가축 사료로도 사용됐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북군의 해상봉쇄와 철도망 파괴, 농업 생산 차질이 겹치면서 남부연합은 심각한 식량난에 빠졌다. 값싸고 영양가 높은 땅콩은 병사들의 허기를 달래는 귀중한 식량이 됐다. 배고픔과 영양실조로 쓰러져 가던 남군 병사들은 한 때 천대받던 땅콩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그들은 <구버 피스>의 능청스럽고 처량한 멜로디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텼다.
* 미국 컨트리 가수 테네시 어니 포드(Tennessee Ernie Ford)가 부른 < Goober Peas >(구버 피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 병사들이 불렀던 노래로, 식량이 부족한 전쟁터에서 삶은 땅콩으로 허기를 달래던 병사들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렸다. '구버 피스'는 미국 남부에서 땅콩을 가리키던 말로, 경쾌한 멜로디 속에 전쟁터의 고단한 일상이 담겨 있다.
"엄마, 나 집에 가고 싶어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군대의 야전 급식 사정도 좀 나아졌다. 통조림 제조 기술이 발달했고, 대규모 군수 보급체계도 갖춰졌다. 하지만 병사들의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의 참호에서 영국군은 통조림 쇠고기인 '불리 비프(Bully beef)'와 딱딱한 비스킷을 자주 먹었다. 후방에서 조리한 음식이 전방에 도착할 때쯤이면 차갑게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진흙탕 참호에서 따뜻한 식사 한 끼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군대의 형편없는 식사를 풍자하는 노래도 이어졌다. 그중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 널리 불린 것이 <지, 마, 아이 워너 고 홈 Gee, Ma, I Wanna Go Home>(엄마, 나 집에 가고 싶어요)이었다. 이 노래 가사에는 커피와 팬케이크, 수프와 닭고기 등이 등장한다.
군대에서 나오는 커피는 상처를 소독하는 데나 쓸 법하고, 팬케이크는 식탁에서 떨어지면 사람을 죽일 만큼 무겁다는 식이다. 음식에 대한 과장된 불평이 이어지다가 후렴에서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친다.
* 미국 포크 가수 피트 시거(Pete Seeger)가 부른 <지, 벗 아이 원트 투 고 홈 Gee, But I Want to Go Home>.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 유행한 노래로, 맛없는 음식과 고된 군대 생활을 익살스럽게 풍자한다. 경쾌한 멜로디와 유머러스한 가사에는 하루빨리 군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병사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 노래는 부대와 시대에 따라 가사가 달라졌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새로운 구절로 만들어 덧붙였다. 군대 음식뿐 아니라 군복과 숙소, 지휘관까지 풍자의 대상이 됐다.
식사 시간을 알리는 나팔 신호인 '메스 콜(Mess Call)'에도 병사들이 장난스러운 가사를 붙이는 전통이 있었다. 나팔 소리가 울리면 식당으로 달려가면서도 정작 배식 받을 음식에 대해서는 불평을 늘어놓는 식이었다.
"수프, 수프, 수프! 콩 한 쪽도 안 들어간 맹물 수프!
돼지고기, 돼지고기! 비계 한 점 없는 질긴 가죽!
커피, 커피, 커피! 더러운 도랑물보다 못한 흙탕물!"
병사들이 원했던 것은 특별한 진수성찬이 아니었다. 고향에서 먹던 음식, 가족과 함께 둘러앉았던 식탁이었다. 군대 밥이 싫다는 불평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통조림이 점령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
제2차 세계대전은 군대의 식생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의 막대한 산업 생산력은 전 세계 전선에 식량을 공급했다.
이 시기 미군이 사용한 대표적인 개인 전투식량이 C-레이션(C-ration)과 K-레이션(K-ration)이었다. C-레이션은 쇠고기와 채소를 넣은 스튜, 고기와 콩 요리 등의 주식 통조림과 비스킷, 사탕, 커피, 설탕 등으로 구성됐다. 하루 세 끼 분량이 지급됐으며, 통조림은 데워 먹거나 그대로 먹을 수 있었다.
K-레이션은 공수부대같이 기동성이 중요한 병력을 위해 개발됐다. 아침·점심·저녁 식량을 각각 작은 상자에 담았으며, 비스킷과 가공육, 치즈, 초콜릿 등이 들어 있었다. 휴대하기 편했지만 열량이 부족하고 메뉴가 단조로워 장기간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호멜사가 생산한 가공육 통조림 '스팸(SPAM)'도 연합군의 주요 보급품이었다.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운반하기 편했지만, 같은 음식을 계속 먹어야만 했던 병사들에게는 고역이었다.
스팸은 미군뿐 아니라 영국과 소련 등 여러 연합국의 식량 공급에도 활용됐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여러 나라의 식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럽 주둔 연합군총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은 종전 후 호멜사 사장에게 "전쟁 중 우리 군대에 스팸을 보급해 준 공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병사들이 스팸에 쏟아냈던 그 수많은 불평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다"고 농담 섞인 감사 편지를 보냈다.
한국전쟁, 해병대원이 꼽은 '죽음의 세 가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은 다시 전쟁터로 향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했던 통조림 중심의 전투식량도 한반도로 건너왔다.
특히 1950년 겨울의 혹한은 야전에서의 식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장진호 전투 당시 미 해병대원들은 영하 30도를 밑도는 추위 속에서 싸웠다. 물과 음식이 얼어붙고, 전투 중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열악한 야전 식사를 익살스럽게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미 해병대원 제리 숍(Jerry Shup)이 쓴 시 < Shup's Song >(숍의 노래)이다. 캘리포니아 출신 해병대원이었던 숍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1951년 9월, 21살 나이로 전사했다.
숍이 남긴 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0년이었다. 그해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미국 <허프포스트>에 그의 시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숍의 노래>는 해병대원의 군 생활을 익살스럽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육군의 카키색 군복과 해군의 푸른 군복도 좋지만, 자신이 소개하려는 전사(戰士)는 특별한 군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적들이 '데블 도그(Devil Dog)'라고 부르는 미 해병대원이다.
시 속의 해병대원은 샌디에이고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캠프 펜들턴에서 전투기술을 익힌다. 해군 함정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면서 배 멀미에 시달리고, 일본에 들러 술을 마시기도 한다.
마침내 한국전쟁에 투입된 그는 수많은 산과 고지를 오르내린다. 포탄이 날아드는 전선에서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고,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뒤에는 무더위와 장맛비에 시달린다. 그렇게 수많은 전투를 치른 해병대원이 가장 용감하게 해낸 일은 무엇이었을까. 숍은 뜻밖에도 적과 싸우거나 고지를 점령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해낸 가장 용감한 일은 '죽음의 세 가지(the deadly three)'를 삼킨 것이었다. 그 세 가지는 콘비프 해시(Corned beef hash), 미트 앤드 빈스(Meat and beans), 그리고 누들스(Noodles)였다.
콘비프 해시는 소금에 절인 쇠고기를 감자 등과 섞은 음식이다. 미트 앤드 빈스는 고기와 콩을 함께 조리한 요리, 누들스는 국수를 이용한 음식이다. 모두 당시 미군 전투식량에서 볼 수 있었던 종류의 음식이었다.
숍은 이 세 가지 음식이 수많은 해병대원을 괴롭혔다고 푸념했다. 미국 본토에서 먹던 제대로 된 식사 한 끼라면 무엇이든 내줄 수 있다는 식의 과장된 불평도 이어진다. 총탄과 포탄을 견뎌낸 해병대원에게 정작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군대 음식이었다는 농담이다.
남북전쟁의 북군 병사들이 건빵을 저주했던 것처럼, 한국전쟁의 해병대원도 통조림을 원망했다. 9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전쟁터의 밥 타령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전쟁터의 밥 한 끼가 갖는 의미
다시 스파르타의 '검은 국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스파르타에서는 평소에 일부러 거칠고 맛없는 음식을 먹게 하고, 전쟁터에 나가면 오히려 더 좋은 음식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쟁에 나가야 비로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전쟁이 반드시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만은 아니라고 여기게 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당대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스파르타가 어린 시절부터 검소한 식생활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스 역사가 크세노폰은 스파르타 소년들에게 일부러 배불리 먹이지 않았으며, 이는 굶주림을 견디고 어떤 음식이 주어지더라도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이었다고 기록했다.
전쟁터에서 더 좋은 음식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평소에 먹기 어려웠던 맛있는 음식이 전쟁터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보상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흥미롭다. 맛있는 음식 한 끼가 전쟁의 두려움마저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물론 전쟁터에서 언제나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병사들은 배고픔을 견디거나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들은 그런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노래로 만들어 서로를 웃겼다.
스파르타의 검은 국물에서 시작해 남북전쟁의 건빵과 땅콩, 한국전쟁의 통조림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병사들이 먹었던 음식은 달랐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바람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전쟁터의 병사들이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화려한 만찬이 아니라, 집에서 먹는 따뜻한 밥 한 끼와 그 평범한 일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쟁과노래 #건빵은이제그만 #남북전쟁 #한국전쟁 #검은국물 프리미엄
War &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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