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오렐리앵 ‘그것 아니면 죽음이었다’가 쏘아올린 공프랑스 4대 문학상 엇갈린 판단 공쿠르·페미나상 후보 탈락, 르노도는 올려 SNS “AI 100% 집필” 의혹 제기국내외 출판계에선 혼란 없애고자 ‘인간 인증’ 마크 도입 움직임아이티 태생의 캐나다 작가텔리송 오렐리앵. AFP연합뉴스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비롯한 프랑스 4대 문학상 후보에 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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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렐리앵 ‘그것 아니면 죽음이었다’가 쏘아올린 공
프랑스 4대 문학상 엇갈린 판단
공쿠르·페미나상 후보 탈락, 르노도는 올려
SNS “AI 100% 집필” 의혹 제기
국내외 출판계에선 혼란 없애고자
‘인간 인증’ 마크 도입 움직임
아이티 태생의 캐나다 작가텔리송 오렐리앵. AFP연합뉴스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비롯한 프랑스 4대 문학상 후보에 오른 한 소설이 집필 과정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되고 있다. 공쿠르상은 해당 작품의 후보 자격을 박탈했지만,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르노도상 측은 의혹이 불거지는 와중에도 해당 소설을 2차 후보에 올렸다. AI를 활용한 출판물이 늘면서, 논란의 초점은 AI 사용 여부를 넘어 AI 사용이 의심되는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논란이 된 작품은 아이티계 캐나다 작가 텔리송 오렐리앵의 <그것 아니면 죽음이었다>(C’était ça ou mourir)이다. 작가의 장편소설 데뷔작으로 아이티의 폭력을 피해 캐나다로 향하는 이주민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캐나다 퀘벡과 프랑스에서 출간 후 호평받으며 여러 상을 받았다. 특히 프랑스 4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공쿠르상, 페미나상, 르노도상, 메디치상의 1차 후보에 모두 오르며 주목받았다.
문제는 지난달 ‘발랑스 통 클로드(Balance ton Claude)’란 이름의 X 계정이 ‘이 소설의 대부분이 AI로 쓰였다’는 주장을 게재하며 불거졌다. AI 텍스트 탐지 프로그램에 작품의 여러 부분을 확인한 결과 ‘100% AI가 썼다’는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후 오렐리앵의 이전 작품도 다른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오렐리앵은 이에 과거의 표절은 사실이라며 사과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AI를 쓰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텔리송 오렐리앵의 소설 <그것 아니면 죽음이었다> 책. AFP연합뉴스
작가와 작품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공쿠르 아카데미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오렐리앵의 작품을 1차 후보 명단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연구자와 언론인의 분석을 바탕으로 오렐리앵의 소설이 AI 창작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하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도 AI의 도움을 받아 생성된 텍스트의 창작을 용인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에서 해당 작품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면서 이후 다른 문학상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추후 오렐리앵의 작품이 AI를 사용한 것이 확인된다면, 이 같은 작품을 선정한 상의 권위와 신뢰성 역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지난 6일 있었던 페미나상은 2차 후보를 발표하면서 이 작품을 제외했다. 공쿠르처럼 후보 자격을 박탈한 것이 아니라, 2차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이라 소설의 AI 집필 여부에 대한 페미나상의 별다른 언급은 없었다.
텔리송 오렐리앵의 작품을 후보에서 제외한다는 공쿠르상의 공지. 공쿠르 아카데미 X 캡처.
이변은 다음 날인 7일 발표된 르노도상 2차 후보에 오렐리앵의 소설이 오르며 벌어졌다. 르노도상 주최 측은 작품의 AI 사용 여부에 대한 판단을 따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의혹이 진실로 판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작품의 문학성만을 놓고 판단했을 때 후보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집필 의혹을 사는 작품을 놓고 주요 문학상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프랑스 문학계에서는 AI와 문학 창작을 둘러싼 논쟁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AI의 사용이 문학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보는 것이 맞는지, 문학상에서 심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AI 사용이 의심되더라도 창작자가 사용 여부를 밝히지 않을 때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등을 놓고 논쟁이 일고 있다.
오는 15일 2차 후보를 발표할 메디치상에서 또다시 오렐리앵의 작품이 살아남거나, 이달 말 발표되는 르노도상 최종 수상작으로 그의 작품이 선정된다면 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문학계 역시 비슷한 혼란에 빠져 있다. 국내 장편 문학상의 심사에 참여했던 한 평론가는 “예심 과정에서 AI를 쓴 것으로 심사위원들의 의심을 모은 작품들이 심사 결과 떨어진 사례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영국작가협회의 인간 인증 마크. SoA 홈페이지
AI 사용이 보편화되고, 작품 창작에 AI 사용을 금지하거나 확인할 방법이 없는 가운데 저작물에 AI 사용 여부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어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AI 사용 여부는 창작자의 판단에 맡기되, 이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방안이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다. 국내외에서 출판물에 ‘인간 인증’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작가협회(SoA)는 작가가 AI로 본문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작품을 등록하면 인간 인증 로고인 ‘휴먼 오서드(Human Authored)’ 마크를 붙일 수 있게 했다. AI 저작물에 대한 규제나 표기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가들이 직접 인간 창작물의 가치를 지키려는 행동에 나선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한국출판인회의, 한국작가회의 등 주요 출판·작가 단체가 함께 논의해 ‘AI 사용 원칙’을 발표했다. 이들은 AI 사용 수준에 따라 ‘인간 저작물’, ‘AI 보조 저작물’, ‘AI 생성 출판물’ 3단계로 나눠 이를 책의 판권면에 표기할 것을 제안했다.
AI를 사용한 창작이 남용되는 것에 대한 경계의 시선도 여전하다. 한 중견 소설가는 “AI를 통해 평범한 수준까지 글쓰기 실력을 높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AI를 이용해 최상의 단계에 오르긴 어렵다고 본다”며 “작가들 다수가 AI를 활용한다면 결국 작품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