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계약서만 봐선 1년 임금 모른다…55개 대학 중 49곳 ‘법 위반 소지’[강사법 7년, 남은 ‘시간강사’①]](https://img.khan.co.kr/news/2026/10/09/news-p.v1.20261008.5394d46f184c4a9695539a5305710125_P1.png)
요약
기본적인 노동·임금 조건이 담기지 않는 대학 강사 임용계약의 현실을 표현한 일러스트. AI 이미지A대학교 강사 인사 규정에는 ‘준비시간 불포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B대는 폐강 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강사 임용계약서에 명시했다. C대는 강의 개설·수강신청 확정 전에 ‘조건부 근로계약’을 ···
본문
기본적인 노동·임금 조건이 담기지 않는 대학 강사 임용계약의 현실을 표현한 일러스트. AI 이미지
A대학교 강사 인사 규정에는 ‘준비시간 불포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B대는 폐강 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강사 임용계약서에 명시했다. C대는 강의 개설·수강신청 확정 전에 ‘조건부 근로계약’을 맺어 계약할 때 강의 여부와 시수·강의료조차 정해지지 않는다.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크지만, 대학가에선 예외라기보다 관행에 가깝다.
8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국무총리 소속 사회대개혁위원회 사회·교육·인권분과의 대학 강사 임용계약서 실태 분석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55개 대학 가운데 49곳(89.1%)은 소정근로시간을 제대로 명시하지 않고 휴일·연차유급휴가도 명확히 적지 않아 세 가지 근로조건 모두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또는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분류됐다. 임용계약서만으로 강사의 1년치 임금 총액을 예측할 수 있는 대학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근로기준법 제17조는 임금의 구성항목과 계산·지급 방법,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유급휴가 등을 근로계약 때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한다. 연구진은 국공립대 30곳과 사립대 25곳의 임용계약서와 관련 규정을 분석한 결과,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17조의 원칙 자체가 대학 현장에서 제대로 규범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장 많은 문제가 확인된 항목은 소정근로시간이었다. 연구진은 55곳 중 50곳(90.9%)을 법 위반 또는 위반 소지로 분류했다. 수업 준비와 시험 출제·채점, 성적 처리 등 강의실 밖에서도 노동이 필요하지만 상당수 대학은 강의 시수를 근로시간으로 보거나 소정근로시간 자체를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다. 이는 대법원이 2024년 판결에서 강의 시간의 3배를 소정근로시간 산정의 기본적인 판단 기준으로 제시하고 하급심도 이를 적용하는 흐름과 배치된다.
불분명한 근로시간은 휴일과 연차에도 영향을 미친다. 휴일과 연차유급휴가 명시 여부에서 법 위반 또는 위반 소지가 있는 대학은 각각 49곳(89.1%)이었다. 일부 대학은 강사의 실제 근로시간에 대한 산정도 없이 ‘(강사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근로자이므로 주휴수당·연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규정을 계약서나 안내자료에 직접 명시해 주휴수당·연차 적용을 계약 단계에서부터 배제했다. 소정근로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으로 산정되면 주휴수당·연차뿐 아니라 퇴직금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될 수 있다.
그래픽 | 성덕환 기자
폐강이나 강의 미배정 때 보수를 지급하지 않거나 보상기준을 제대로 두지 않은 대학도 많았다. 40곳(72.7%)은 보상기준이 없거나 불충분했고, 15곳(27.3%)은 폐강 시 강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보고서는 수강인원 미달 등 대학의 지배·관리 범위 내 사정에 따른 폐강은 근로기준법상 ‘휴업’에 해당해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해야 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현 계약 구조에선 강사의 책임과 무관한 폐강으로 임금이 ‘0’이 될 수 있다.
임금 산정도 불투명했다. 학기 중 임금 산정식과 방학 중 지급 조건·기간 규정을 모두 갖춘 대학은 2곳뿐이었고, 이들마저 시간당 강사료의 산정·조정 기준은 구체적으로 두지 않았다. 다른 대학들의 계약은 더 불분명했다. 한 대학은 학기 중 시간당 강사료만 명시하고 방학 중 임금 계산방식은 두지 않았고, 또 다른 대학은 방학 중 임금을 별도 항목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연구진 분석 결과 임용계약서만으로 연간 임금 총액을 계산할 수 있는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2018년 12월 고등교육법이 개정되고 이듬해 8월 이른바 ‘강사법’(고등교육법 제14조 등)이 시행되면서 대학의 ‘시간강사’는 고등교육법상 교원인 ‘강사’가 됐다. 1년 이상 임용과 재임용 절차, 방학 중 임금 등 처우 개선 장치도 마련됐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도 강사의 노동시간과 임금, 휴일·연차 등을 정하는 계약은 강의 시간 중심으로 산정하는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강사법 시행 이후 교육부와 대학·강사단체가 공동 마련한 표준계약서에도 임금 산정방법 기재란이 공란으로 남아 있고 소정근로시간·폐강 관련 조항이 빠져 있던 점 역시 이 같은 관행이 지속된 배경으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이미애 제주대 학술연구교수와 이상룡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이 공동 작성했다. 이 교수는 “강사법 개정 당시 교원 지위와 함께 강사의 처우를 뒷받침할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도 힘썼지만 최종 협의 과정에서 모두 반영되지는 못했다”며 “7년 전에 합의한 내용들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만큼, 이제는 근로기준법에 맞춰 미뤄온 노동조건 문제를 다시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