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미국과 유럽, 일본의 채권 금리가 수십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진다.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만, 이 소식을 보며 내 대출 이자와 집값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우려다. 미국도 요즘 고금리로 어렵다. 가장 먼저 체감되는 곳은 부동산 시장이다. 9월 말 30년 만기 고정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는 7.03%로, 2025년 1월 이후 처음 7%를 넘었다. 5년여 전인 2021년 1월에는 2.65%였다. 1971년 조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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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일본의 채권 금리가 수십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진다.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만, 이 소식을 보며 내 대출 이자와 집값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우려다.
미국도 요즘 고금리로 어렵다. 가장 먼저 체감되는 곳은 부동산 시장이다. 9월 말 30년 만기 고정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는 7.03%로, 2025년 1월 이후 처음 7%를 넘었다. 5년여 전인 2021년 1월에는 2.65%였다. 1971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였다.
금리가 이만큼 오르면 같은 집을 사도 매달 갚아야 할 돈이 크게 늘어난다. 다만 모든 미국인이 이 부담을 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주택담보대출은 열에 아홉 이상이 30년 동안 금리가 바뀌지 않는 고정금리다. 이미 집을 산 사람은 시장 금리가 올라도 빌릴 때의 금리를 그대로 낸다. 부담은 주로 지금 집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한국 가계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은행이 새로 내주는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고정금리 비중이 3분의 1 남짓에 그친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도 함께 오르는 대출이 대부분이어서, 고금리의 직격탄을 미국보다 더 일찍, 더 강하게 맞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지 상황을 잘 이해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고금리는 왜 상당 기간 지속될까
지금의 고금리는 지난 20년 가까운 저금리 시대가 남긴 결과다. 그 시대에 쌓인 빚이 워낙 많아서 그것을 정리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시작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기준금리를 0% 가까이 내리고,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직접 사들여 시장에 돈을 풀었다. 코로나가 터지자 같은 일을 더 큰 규모로 되풀이했다. 2008년 1조 달러에 못 미쳤던 연준 자산은 2022년 약 9조 달러로 불어났고, 긴축을 거친 지금도 6조 달러대에 머물러 있다. 유럽과 일본의 중앙은행도 같은 길을 걸었다. 3% 모기지는 이렇게 중앙은행이 눌러 놓은 금리 위에서 가능했다.
금리가 낮으면 빚이 늘어난다. 2005년 약 130조 달러였던 전 세계 부채는 올해 상반기 365조 달러를 넘었다. 20년 사이 세 배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정부도 기업도 가계도 낮은 금리가 계속되리라는 전제 위에서 빚을 냈다. 미국 정부의 빚은 특히 빠르게 늘었다. 미국 국가부채는 2022년 1월 30조 달러를 넘은 뒤 올해 8월 40조 달러를 돌파해, 4년 반 만에 10조 달러가 불어났다.
문제는 이 빚을 대부분 새로 빌려서 갚는다는 데 있다. 만기가 오면 지금의 금리로 다시 빌려야 한다. 8월 말 미국 정부 빚의 평균 금리는 3.49%로, 아직 싸게 빌린 돈이 많이 섞여 있다. 그런데도 2020회계연도에 약 3450억 달러였던 미국 정부의 순이자 비용은 이번 회계연도 첫 9개월 만에 8270억 달러에 이르렀다. 빚의 규모가 큰 만큼, 높은 금리로 새 빚을 내 옛 빚을 갚는 구조는 상당 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의 민간 자금도 미국으로 몰렸다. 세계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전세계지수에서 미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월 말 63.59%에 이른다.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장기 증권은 5월 말 39조 달러를 넘어 역대 최고치다.
인공지능 붐을 이끄는 빅테크 기업들은 채권시장에서도 대규모로 돈을 빌리고 있다. 올해 7월까지 미국 회사채 발행은 1조 6810억 달러로, 1년 전보다 27% 가까이 늘었다. 한정된 투자자의 돈을 놓고 회사채와 국채가 경쟁하니, 돈을 빌리려면 더 높은 금리를 내야 한다. 회사채와 국채가 서로 금리를 밀어 올리는 구조다.
세계의 돈이 이렇게 미국 한 곳에 몰려 있으면, 미국 금리가 오르거나 미국 주가가 흔들릴 때 그 충격이 전 세계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로 한꺼번에 번진다. 미국 국채 금리가 세계 돈값의 기준인 만큼, 미국 금리가 높게 유지되는 한 세계 금리도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 금리도 세계와 연동해 움직인다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면 한국 국고채 금리도 따라 오른다. 대출 금리의 바탕이 되는 장기 금리는 한국은행의 결정만큼이나 채권시장의 흐름에 좌우되고, 그 시장에서 외국인의 몫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외국인이 보유한 국고채는 297조 4000억 원으로, 전체의 25.7%였다. 역대 최고 비중이다. 올해 4월에는 한국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정식 편입되어, 이 지수를 따라 투자하는 세계 채권 펀드들이 한국 국채를 일정 비중으로 담게 됐다.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자산만 따로 떼어 보지 않는다. 그 수익을 미국 같은 다른 나라 자산과 늘 비교한다. 9월 3일 한국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연 4.367%, 미국 10년물 국채는 4.769%였다. 더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가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상황에서, 한국 국채가 그보다 크게 낮은 금리로 해외 자금을 붙잡기는 어렵다. 2025년 1월 1.81%포인트까지 벌어졌던 두 나라의 장기 금리 차이는 이제 0.4%포인트 안팎까지 좁혀졌다. 그사이 한국 금리가 미국을 따라 올라온 것이다.
미국발 금리 상승은 이미 국내 채권시장으로 번졌다. 외국인은 8월 국내 채권에서 4조 7360억 원을 회수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까지 4%대로 올라서자, 정부는 지난 2일 10월 국고채 발행을 계획보다 5조 원 줄이고 3조 5000억 원 규모의 긴급 바이백에 나서기로 했다.
주식에서 나타난 변화는 더 크다. 8월 말 외국인 보유 주식은 2280조 6000억 원으로, 시가총액의 34.8%에 이른다. 외국인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일곱 달 연속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다. 핵심 이유는 반도체 주가가 급등하면서 세계 신흥국 펀드 안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몫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데 있다.
신흥국 투자의 기준이 되는 MSCI 신흥국 지수에서 한국 비중은 6월 말 23.72%까지 올라 한때 중국을 앞질렀다. 8월 말 기준으로도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세 종목이 지수의 약 28%를 차지한다. 국가별·종목별 위험 한도를 두고 운용하는 펀드들은 한국 비중이 이렇게 커지면 일부를 덜어낼 수밖에 없다. 외국인의 매도는 한국 경제에 대한 판단이기 이전에 세계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맞추는 일이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바깥의 작은 변화에도 돈이 크게 움직인다. 외국인은 8월 국내 주식을 3440억 원 순매수해 8개월 만에 사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9월에는 다시 대규모 매도로 바뀌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월 1일부터 10월 2일까지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20조 3050억 원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22거래일 가운데 순매수한 날은 7일뿐이었고, 매도액의 약 85%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두 종목에 몰렸다. 그 결과 SK하이닉스의 외국인 보유율은 49.76%로 3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아졌다.
외국인에게 한국은 이제 세계 포트폴리오 속 하나의 비중이다. 세계 금리가 오르거나 변동성이 커지면 펀드는 한국 주식부터 줄인다. 그 돈이 원화를 거쳐 빠져나가거나 다시 들어올 때마다 환율은 크게 출렁인다.
경기가 식더라도 세계 금리가 높은 동안 한국만 금리를 크게 내리기는 어렵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과 8월 연이어 금리를 올린 것도, 한국 금리가 오랫동안 높게 유지될 가능성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구조가 문제다
미국 가계가 고금리를 견디는 힘은 대출 구조에서 나온다. 미국 주택담보대출은 대부분 30년 고정금리이고, 변동금리 대출은 잔액의 4% 안팎에 불과하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미국 주택담보대출 잔액의 64.3%가 정부기관이 보증한 주택저당증권(MBS)으로 바뀌어 금융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는 위험은 이 채권을 산 은행과 해외 투자자, 연준이 나눠진다.
한국은 고정금리 비중이 작아, 금리가 오르면 그 충격이 가계에 훨씬 빠르고 급격하게 전달된다. 은행이 새로 내준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고정금리 비중은 7월 31.9%로 2014년 2월 이후 가장 낮았고, 8월에도 35.3%에 그쳤다.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신규 가계대출 전체로 보면 8월 고정금리 비중은 23.5%였다. 새로 나간 가계대출의 4분의 3 이상이 금리가 오르면 이자도 함께 오르는 대출인 셈이다.
한국의 고정금리는 미국의 고정금리와 다르다. 한국의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은 상당수가 처음 5년만 금리를 고정하고, 이후 변동금리로 바뀌거나 5년마다 금리를 다시 정한다. 2021년 초저금리 때 이런 대출을 받은 사람은 고정 기간이 끝나는 요즘 새 금리를 맞는다.
금융당국이 고정금리 대출에 대출 한도 혜택을 주고 한은이 두 차례 금리를 올렸는데도, 신규 차주들은 변동금리로 몰렸다. 금리가 더 오를 위험보다 집값이 오를 기대를 더 크게 보기 때문으로 보인다. 8월 은행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4.66%로 2022년 11월 이후 가장 높았다. 그래도 집값이 이자보다 빨리 오른다면, 당장 조금이라도 싼 변동금리를 고르는 편이 이득처럼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은 8.71% 올랐다. 이만큼 오른다면 4%대 이자를 내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계산은 집값이 금리보다 빨리 오를 때만 맞는다. 미국 가계는 그 계산이 틀렸을 때의 대가를 오래 치렀다. 2006년 7월 정점을 찍은 미국 전국 집값은 2012년 2월까지 27% 떨어졌고, 바닥 무렵에는 대출이 있는 집의 3분의 1 가까이가 집값보다 빚이 더 많은 '깡통 주택'이 됐다. 집값이 2006년 고점을 되찾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그동안 빚을 진 가계는 집을 팔지도 못한 채 이자를 감당해야 했다.
한국 가계는 여기에 금리 위험까지 함께 진다. 변동금리 대출이 대부분이어서 집값 하락과 금리 상승을 한꺼번에 맞을 수 있다. 고금리가 오래 이어지면 그 충격은 더 깊고 오래갈 수밖에 없다.
고금리 시대, 셈법을 바꿔야 한다
2008년 이후 저금리 속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은 전 세계에 엄청난 빚을 남겼다. 빚이 커진 만큼 고금리도 오래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고금리 압박은 한국도 비켜 갈 수 없다. 세계의 돈이 미국 국채와 주식에 몰려 있는 만큼, 미국 금리가 높게 유지되면 돈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미국으로 향한다. 한국이 금리를 미국보다 크게 낮게 두면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가 약해진다. 미국의 고금리가 이어지는 한, 한국은 금리를 내리기 어렵고 오히려 올려야 하는 압박을 계속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 가계는 대출 구조 때문에 그 영향을 미국보다 빨리, 더 직접 받는다.
미국의 경험은 정책 당국에도 분명한 교훈을 준다. 미국 가계가 고금리를 버티는 것은 30년 고정금리 덕분이고, 그 금리 위험은 주택저당증권을 산 금융시장이 나눠진다. 한국 정부도 장기 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과제로 내걸고 있지만, 지금까지 정책은 대출 한도를 조이는 데 집중돼 왔다. 고금리가 오래간다면 빚의 양을 묶는 것만큼, 빚의 금리 위험을 누가 지게 할지를 바꾸는 일이 중요해진다.
다만 제도가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은 가계가 스스로 대비할 수밖에 없다. 대출을 고를 때 지금 어느 쪽 금리가 낮은지만 볼 일은 아니다. 변동금리라면 금리가 오를 때 이자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혼합형이라면 고정 기간이 언제 끝나는지부터 알아 두는 것이 좋다. 금리가 잠시 내려갈 때 그것을 저금리로 돌아가는 신호로 읽고 빚을 늘리면, 금리가 다시 오를 때 부담이 커진다.
집값은 떨어질 수 있지만, 빚의 이자는 내가 자는 동안에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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