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잠깐만 볼까?' 이렇게 무심코 한 유튜브 영상을 보기 시작했는데,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30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이 내 앞에서 고대 악기인 리라를 살짝살짝 튕기며 '오뒷세이아'의 거대한 서사를 한 대목씩 읊었다. 나는 당대 이야기꾼, 호메로스와 마주앉았던 것이다. AI가 되살려 놓은 3000년 전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던 것. 여운이 남아 유튜브에 달린 댓글을 스크롤을 내리며 잠시 훑었다. '수신료의 가치를 뛰어 넘는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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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볼까?'
이렇게 무심코 한 유튜브 영상을 보기 시작했는데,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30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이 내 앞에서 고대 악기인 리라를 살짝살짝 튕기며 '오뒷세이아'의 거대한 서사를 한 대목씩 읊었다. 나는 당대 이야기꾼, 호메로스와 마주앉았던 것이다. AI가 되살려 놓은 3000년 전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던 것.
여운이 남아 유튜브에 달린 댓글을 스크롤을 내리며 잠시 훑었다. '수신료의 가치를 뛰어 넘는다'부터 여러 가지 칭찬 댓글이 뒤따랐지만 특히 '우리 엄마 아빠가 좋아할 법한 걸 나도 보고 있네'라는 댓글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 싶었으니까.
AD 흔히 고전엔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오래된 이야기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도 선뜻 책장을 넘기기 어렵다. 그런데 화면 속 <오뒷세이아>는 달랐다. 높은 조회수(공개 3주차인 9월 29일 현재 255만 회)처럼 어렵게만 느껴졌던 고전이 한 편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오뒷세이아>는 EBS가 선보인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의 첫 작품이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를 AI 기술로 되살려 시청자에게 생생히 전달한다. <오뒷세이아>는 최근 AI 우리말 더빙 버전으로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됐다.
그렇다면 EBS는 왜 지금, 어렵고 오래된 고전을 AI로 다시 꺼내 들었을까. 지난 9월 22일 일산 EBS 본사에서 임시진 PD(AI 지식콘텐츠부)를 만나 이 점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고전을 '공부'가 아닌 '이야기'로 만난다면
- 간단히 소개한다면.
"임시진입니다. 2011년 EBS에 입사해 올해로 15년째를 보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딩동댕 유치원> <생방속 톡!톡! 보니하니>의 조연출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이후 편성기획부에서 있었고, <클래스e>와 같은 강연 프로그램과 지금 맡고 있는 AI 고전 콘텐츠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 오늘 아침(인터뷰 당일)까지도 바쁘셨다고요.
"네. 인터뷰 준비를 조금 하다가 <오뒷세이아>를 보신 분들이 발음과 억양에 대한 지적을 해주셔서 계속 수정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앞으로 <목민심서> <도덕경>처럼 동양과 우리나라 고전도 다룰 계획인데, AI 음성의 한계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거든요. 아직 기술적 여건상 한국어 음성을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데 제약이 있지만,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AI 음성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전문 성우의 녹음으로 보완하려고요. 실제로 한글날을 맞아 오는 10월 3, 4일에는 <오뒷세이아> 10부작 우리말 더빙본을 2부작으로 방송할 계획인데요, 이번에는 전문 성우분들이 참여해 AI 음성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실 겁니다. 시청자분들이 고전을 더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 기술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무게를 둘 생각입니다."
- <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이라... 100권이나 되는 고전을 AI 영상으로 만든다는 게, 기획 자체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저도 고전을 한 권 한 권 읽기 시작했어요. 최대한 말이죠.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AI로 뽑아낸 결과물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수정도 거쳐야 해요.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직접 써봐야 하고요. 그래서 저를 비롯한 팀 모두가 집중력 있게 제작하고 있어요."
- AI 고전 첫 책으로 <오뒷세이아>의 포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지금은 영화로 유명해졌고, 그 덕분에 관심 받은 부분도 있지만, 사실,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의 100권 자체는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EBS 독서진흥자문위원회가 이미 2023년에 꾸려졌고, 교수님들이 분야별로 역사에 영향을 끼친 책들을 추려 100권을 선정했습니다.
그 가운데 첫 책을 고르는 일은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잘 알려진 작품이면서도 권위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시리즈의 첫 출발인 만큼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오뒷세이아>가 적합하다고 판단했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요소를 많이 찾을 수 있어요. 첫 시리즈에서는 그런 관심과 함께 고전으로서의 권위도 갖추고 싶었어요. 방송 이후 유튜브 댓글을 통해 '(덕분에)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격려의 말씀을 보고, 저희 모두 힘을 내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 일반적인 고전 소개 프로그램이라면 교수나 전문가가 책을 설명하며 CG를 넣는 방식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굳이 AI로 저자와 고전의 세계를 되살린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희는 색다른 방식을 통해 <오뒷세이아>의 원문을 충실히 따라가는 동시에 저자인 호메로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구현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 방식으로 AI 카드를 꺼내 든 거죠. 최대한 AI로 그 시대의 숨결과 이야기를 눈앞에 되살리고자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번역자, 관련 교수님들과 계속 소통하며 왜곡된 부분이 없는지 재차 확인했고요. 최대한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임시진 PD는 고전을 '공부해야 할 과목'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로 새롭게 만날 수 있도록 보여주고 싶었다. 때문에 실제로 이 영상을 보다 보면 해설자가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인물의 선택과 감정,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질문을 따라가 스스로 예상치 못한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기자가 영상을 보면서 그때그때 화면을 정지해 놓고 오래 머물렀던 이유도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아래는 당시 메모했던 내용들이다.
'우리를 인간 답게 만드는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우리를 사랑하느냐 하는 점이다'
'진정한 지혜는 아는 데 있지 않고, 분별하는 힘에 있다'
'고전은 죽은 텍스트가 아니라, 오늘을 해석하는 사고의 도구'
3000년 전 <오뒷세이아>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뒷세우스는 대단한 왕이나 장군이라기보다는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에 가까워요. 그러다 보니 실수도 하고, 부하를 잃기도 하고, 자신의 말 한마디로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결국 자신이 돌아가야 할 자리를 찾아갑니다. 저는 이 과정이 주는 서사야말로 <오뒷세이아>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결국 오뒷세우스가 긴 모험 끝에 찾아가는 것은 '자기 자리'라고 보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영상을 보는 동안 내 자신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고전이 오래 살아남는 연유도 그런 데 있는 것 아닐까요? 시대와 공간은 달라졌지만 그 안에서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갈 것인지는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이기도 하니까요."
- 오뒷세우스가 영생과 불멸의 기회를 마다하고 결국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는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는데, 이 장면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그 장면이 중요합니다. 그 선택은, 결국 자신의 본질과 연결되지 않을까요? 오뒷세우스는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결국 그곳을 찾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하는 부분을 깨닫게 해줍니다. 아마 많은 분이 이 장면에서 같은 생각을 하셨을 거예요."
- 이번 AI 고전 <오뒷세이아>를 기점으로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저는 <오뒷세이아>가 AI 영상만으로 끝나길 바라지 않아요. 많은 분이 이번 기회에 고전을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영상을 보고 책을 찾아 읽고, 더 많은 질문을 찾아 여정을 떠나보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다만, '누구나 고전을 꼭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어요. 중요한 것은 나의 본질을 생각하고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 부분이 AI 영상 제작의 본질이었군요. 이해했습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우선 학생들과 학교를 찾아 직접 고전을 읽는 캠페인부터 시작해보려고 해요. 이후 병원이나 군대 등으로 범위를 넓혀가면서 사람들이 함께 책을 읽는 독서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AI 고전은 그 과정으로 들어가기 위한 디딤돌이거든요."
- 마지막으로, <오뒷세이아>를 본 시청자와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역시 책을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고요(웃음). 또...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거죠. 저희가 AI를 이용해 고전을 제작한 이유도 고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데 있거든요. 앞으로도 저희 EBS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여러분과 자주 소통하면 좋겠어요."
고전이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어쩌면 단순한 데 있지 않을까. 오뒷세우스가 마주한 수많은 선택과 상실, 사랑과 갈등은,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도 낯설지 않다. 시대가 바뀌어도 고전 속 질문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곤 한다.
임시진 PD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3000년 전 오뒷세우스가 던진 질문이, 앞으로도 유효하니까.
#EBS#임시진PD#호메로스#고전#AI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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