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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웬일... 주식을 팔았는데 판 기억이 없다

이게 웬일... 주식을 팔았는데 판 기억이 없다

요약

'갓○○'으로 불리던 주식 전문가가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둔갑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온다. 찍어주는 종목마다 오르던 호시절, 전문가들은 '족집게' 소리를 들으며 끗발 날리는 인플루언서가 된다. 그런데 하락장으로 전환되는 순간, 댓글창은 폭발한다.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성토가 쏟아진다. 어제까지 신이었던 사람이 오늘은 사기꾼이 된다. 투자를 시작한 지 아직 1년이 안 됐지만 이런 장면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전문가의 조언이나 기술적 지표는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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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거시경제 분석도, 종목 추천도 아니다. 평범한 시민이 주식시장에서 마주치는 욕망, 불안, 확신, 후회 같은 감정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시선으로 읽어보려는 기록이다.'갓○○'으로 불리던 주식 전문가가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둔갑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온다. 찍어주는 종목마다 오르던 호시절, 전문가들은 '족집게' 소리를 들으며 끗발 날리는 인플루언서가 된다. 그런데 하락장으로 전환되는 순간, 댓글창은 폭발한다.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성토가 쏟아진다. 어제까지 신이었던 사람이 오늘은 사기꾼이 된다.

투자를 시작한 지 아직 1년이 안 됐지만 이런 장면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전문가의 조언이나 기술적 지표는 추세가 뚜렷한 장에서는 꽤 잘 들어맞는다. 왜냐하면 특정 추세가 이어질 땐 예측에 큰 변수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니 확률상 잘 맞기 때문이다. 문제는 추세가 전환되는 바로 그 시간부터다. 그 순간이 되면 그 좋다던 지표도, 그 잘 맞히던 전문가도 힘을 잃는다.

이런 무력함은 지표 하나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들여다본 미국주식 계좌 하나가 그랬다. 주가는 꾸준히 오르는데 수익률은 계속 쪼그라들었다. 원인은 '환율'이었다. 살 때는 달러 강세, 지금은 원화 강세. 똑같은 주가인데도 화폐의 기호가치가 달라지면서 수익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수익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AI생성 이미지
▲수익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금리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보니 내가 들고 있던 기술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떨어져 있었다. 이유를 들여다보니, 미국 30년 만기 국채금리가 19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AD 더욱이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려 국채를 대량 발행하는 동시에, AI 인프라에 투자하는 빅테크 기업들도 회사채를 대거 찍어내면서, 한정된 투자자 자금을 놓고 정부와 기업이 경쟁하는 모양새가 됐다.

장기채 금리가 오르며, 내 기술성장주의 주가가 짓눌렸다. 성장주는 '앞으로 벌어들일 이익'에 대한 기대가 반영돼 있는데, 금리가 오르면 그 먼 미래의 이익을 오늘 가치로 환산할 때 더 깎아서 계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율도 금리도, 내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기댈 만한 누군가를 찾게 된다. 내가 손댈 수 없는 영역일수록 사람들은 전문가라는 존재를 '답을 아는 자'의 자리에 세운다.

환율도, 금리도, 손댈 수 없었다

여기서 라캉의 개념 하나를 빌려오고 싶다. 바로 '대타자(大他者)'다. 대타자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마치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대하게 되는 언어와 담론의 구조 그 자체를 말한다.

라캉은 우리의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라고 말한다. 내가 '내 생각'이라 믿는 것의 상당 부분이, 실은 나에게 작용하는 "말의 효과"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의식이 대타자의 담론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은, 동시에 주체가 자신의 결핍과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그 담론을 욕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라캉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

내 상황에 대입해 보면, 내 무의식은 소위 주식 전문가, 투자 전문가들의 말들로 구성된 대타자에 의해 지배받는다. 사실 특정 개인이라기보다는 경제 유튜버, 투자회사 대표, 경제전문기자 등의 '말'이 하나의 인격체처럼 내게 말을 거는 것이다. 환율과 금리처럼 내가 손댈 수 없는 영역을 마주할수록, 나는 더더욱 그들의 말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목표나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의 말이 품고 있는 욕망이 내 욕망이 된다.

실제로 그랬다. 유망 종목 추천, 매수·매도 타이밍, 시황 분석 영상을 매일같이 검색하고 스크리닝하며 그렇게 정보의 '콜렉터'가 되어 있었다. 정보를 모으는 행위 자체는 나쁠 게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모은 정보를 갖고 실제로 사고팔지 말지를 정하는 최종 판단, 이른바 '저지(judge)'의 자리가 필요한데, 나는 그 자리를 매번 '대타자'에게 넘겨버렸다. 내 주식계좌에 있는 종목들의 포트폴리오 변화는 모른 채 주식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입만 바라보는 꼴이다.

이 콜렉터 노릇의 밑바닥에는, 아마도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주가가 하락하면 그 손해를 고스란히 직시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그게 온전히 내 판단 때문이라면, 그건 무섭다. 그러니 차라리 그 판단을 전문가에게 맡겨두는 편이 낫다고 느끼는 것이다. 손해를 봐도 "그 사람 말을 믿었으니까"라고 할 수 있고, 적어도 그 손해가 순전히 '내 탓'이 되는 상황만은 피할 수 있으니까.

7월에 판 주식,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최근 매일 쓰기 시작한 주식들 가격.
▲최근 매일 쓰기 시작한 주식들 가격. ⓒ 안유림

이 실체를 제대로 마주친 일이 있다. 수익률이 회복되지 않는 ETF종목의 매매일지를 뒤져보다가, 7월 어느 날 내가 이 종목을 일부 매도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그런데 나는 그 기억이 전혀 없었다. 누가 계좌를 해킹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름 돋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매일 뉴스를 분석하고 경제 전문가 유튜브를 챙겨보면서도, 정작 내가 '매도'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 자체는 기억하지 못했으니. 당시 어떤 대타자가 지금이라도 팔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혼자 불안을 못 이겨 일부 손절을 했던 걸까. 매도 버튼을 누른 그 손가락은 누구의 손가락이었을까.

결국 일부 매도 이후 그 종목은 반등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봤더니, 그 ETF의 구성종목들이 그 사이 일부 리밸런싱돼 있었다. 내가 산 건 같은 이름의 상품인데, 그 안에 담긴 종목은 조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 변화 역시 내 수익률에 분명한 영향을 주고 있었는데도, 나는 또 그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내가 "내 판단"이라고 믿고 실행한 매도조차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 채 실행해버렸다. 라캉이 말한 무의식이 나에게 작용하는 과정이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니었을까. 확인해야 할 것은 내 계좌였는데, 내가 붙들고 있던 건 실체가 없는 담론이었다.

나는 대타자의 '말'을 거의 매일 읽고, 듣고, 저장한다. 그런데 정작 내 주식 종목의 포트폴리오나 매매일지는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다. 그러니 나의 독자적 판단의 기능은 계속 축소되고, 그 판단에 대한 기억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게 돼버렸다.

라캉은 경고한다. "대타자의 대타자란 없다"고. 내가 기댔던 그 전문가 뒤에 더 정확한 전문가가 있고, 그 뒤에 또 다른 권위가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 사슬은 어딘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끝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대타자에게서 벗어나 '판단' 자체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을까. 앞으로 그 무의식이 아예 작용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을까. 라캉에 따르면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냉정히 따져봐도 그렇다.

다만 '인지'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들은 이야기 말고, 내가 내 눈으로 본 것을 기록하는 것. 그래서 나는 요즘 원금 회복이 요원한 종목의 종가를 매일 기록한다. 어제 본 숫자와 오늘 본 숫자가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내 빨간불과 파란불의 채도가 얼마나 다른지.

대단한 결심도, 새로운 원칙도 아니다. 그저 내 계좌의 신호등부터 내가 직접 보는 일. 이 사소한 행위가 그 노력의 시작이다. 대타자는 내 계좌의 불빛까진 모르니까.
#경제#주식#재테크#라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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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하다 만난 라캉

글 안유림 (23susanna) 내방

직장인, 워킹맘, 시민기자, 작가. 일상을 글로 풀어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고점에서 산 반도체 ETF, 매일 계좌 보며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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