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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해진 아침, 나는 다시 '어떤날'을 듣는다

선선해진 아침, 나는 다시 '어떤날'을 듣는다

요약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문턱이다. 이제는 선선함을 넘어 제법 싸늘해진 아침, 이런 날이면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바로 '어떤날'이다. 소년 시절, 나는 그들의 음악이 참 좋았다. 너무 좋았지만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포크라고 하기에도, 록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당시의 대중가요라고 부르기에도 어딘가 달랐다. 그저 '어떤날'은 어떤날이었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아직 꿈 많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소 차가워진 공기…

본문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문턱이다. 이제는 선선함을 넘어 제법 싸늘해진 아침, 이런 날이면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바로 '어떤날'이다.

소년 시절, 나는 그들의 음악이 참 좋았다. 너무 좋았지만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포크라고 하기에도, 록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당시의 대중가요라고 부르기에도 어딘가 달랐다.

그저 '어떤날'은 어떤날이었다.

 어떤날 1집 <어떤날 - 1960·1965> 앨범 커버
▲어떤날 1집 앨범 커버 ⓒ 멜론(Melon)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아직 꿈 많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소 차가워진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나섰다. 자연스럽게 내 귀에는 '어떤날'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AD '어떤날'은 조동익과 이병우가 1984년 만나 음악을 만들기 시작해 1986년 1집 <어떤날-1960·1965>를 발표했다. 그리고 1989년 2집 <어떤날 2>를 내놓았다. 그렇게 '어떤날'은 오로지 두 장의 음반만을 남겼다.

당시 '어떤날'은 방송에 나와 얼굴을 알리고 무대에서 팬들을 만나는 일반적인 대중음악가들과도 달랐다. 공연이나 방송보다 음반을 만드는 일, 레코딩 자체에 집중했다. 앨범 표지도 그랬다. 화려한 사진이나 자신들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소박한 디자인과 손글씨로 자신들의 음악을 이야기했다. 오직 음악만으로 자신들을 설명하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였을까. '어떤날'의 음악은 유행을 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주 생각나는 음악이 됐다. 한동안 듣지 않다가도 계절이 바뀌고 이렇게 아침 공기가 선선해지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찾아 듣게 된다.

거장 조동진의 흔적

'어떤날'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어떤날' 조동익의 형, 조동진이다.

조동진은 1966년 미8군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록그룹 쉐그린과 동방의 빛에서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했다. 1979년 첫 앨범 <조동진>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음악을 시작했다.

대중매체에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아 한때 '얼굴 없는 가수'로 불리기도 했다. 동생 조동익 역시 '어떤날'로 활동하면서 방송이나 대중매체에 자신의 모습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형제가 닮은 점이라면, 어쩌면 자신을 알리는 일보다 음악 그 자체로 이야기하려 했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1979년 발표되어 한국 언더그라운드 포크 음악의 이정표가 된 조동진 1집
▲1979년 발표되어 한국 언더그라운드 포크 음악의 이정표가 된 조동진 1집 ⓒ 멜론(Melon)

그는 1980년 '나뭇잎 사이로', 1985년 '제비꽃' 등을 발표하면서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자리 잡았다.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삶의 위로를 받는다. 그중에서도 내가 유독 좋아하는 노래가 '제비꽃'이다.

특히 그의 제수씨인 장필순의 목소리로 듣는 '제비꽃'은 조동진의 원곡과는 또 다른 결이 있다. 같은 노래인데도 다른 시간과 마음이 느껴진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들의 시간이 내 시간과 포개지고,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까지 함께 떠오른다. 마음 한구석이 시려 오면서도, 그 시절의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나를 편안하게 한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는 그런 음악을 만들어 내던 특별한 흐름이 있었다. 조동진을 중심으로 동아기획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든 음악가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준 들국화 같은 뮤지션들이 있었다. 어떤날 역시 그 시대의 공기 속에서 태어난 음악이었다.

형의 길을 이어간 동생

조동진은 동생 조동익의 음악적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어떤날' 활동 이후 조동익은 형 조동진과 함께 1992년 음악 공동체 하나음악을 만들었고, 2011년부터는 그 흐름을 이어받아 '푸른곰팡이'를 꾸려 가고 있다.

2020년에는 26년 만에 정규 앨범 <푸른 베개>를 발표했다. 제주에서 생활하며 만든 이 앨범에는 장필순이 보컬로 참여했고, 여동생 조동희도 목소리를 보탰다. 그중 아홉 번째 곡 'farewell. jdj, knh[1972]'이 바로 동생의 목소리를 빌려, 유년 시절 조동익이 형 조동진과 형수 김남희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곡이다.

 조동익이 2020년 발표한 26년 만의 솔로 정규 앨범 《푸른 베개(blue pillow)
▲조동익이 2020년 발표한 26년 만의 솔로 정규 앨범 《푸른 베개(blue pillow) ⓒ 멜론(Melon)

그만큼 조동익은 어린 시절부터 형의 음악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노래에 담긴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열두 살 무렵, 토요일이면 용돈을 모아 작은형 조동진에게 담배 한 갑을 사 들고 찾아가곤 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낡은 전축과 통기타가 있었고, 형은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어린 조동익에게 그곳은 단순한 형의 집이 아니었을 것이다. 음악을 듣고 배우는 공간이었고, 어쩌면 자신의 꿈이 싹튼 첫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떤날'이라는 명작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동익의 음악 뒤에는 조동진이라는 거장이 있었고, 그 음악을 듣고 자란 한 소년이 성장해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형에게서 시작된 음악의 기억은 동생의 음악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어떤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사람은 떠나도 음악은 남는다

아쉽게도 거장 조동진은 2017년 8월 28일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어느덧 9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 참 빠르다. 얼마 전에는 들국화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최구희의 부고를 접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가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최구희의 부고를 소셜미디어에 전하며 안타까움을 전했던 들국화의 최성원이, 바로 이 앨범의 기획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에서 묘한 기묘함을 느낀다.

최성원은 들국화의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음악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가 만든 '제주도의 푸른 밤'은 지금도 수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며, 세대를 넘어 변함없이 사랑받는 노래로 남아 있다.

정말 음악은 참 이상하다. 사람은 떠나도 음악은 남는다. 그리고 남겨진 음악은 그 사람과 인연을 맺었던 또 다른 음악과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러낸다. 조동진을 떠올리면 조동익이 생각나고, 조동익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어떤날'의 음악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그저 자연스러운 음악적 연결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단순한 연결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의 음악에서 시작된 기억이 또 다른 음악을 만나고, 그 음악이 다시 오래전의 나를 불러내는 순간,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늘 아침, 여느 날처럼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음악이 아니라 내 감각과 기억이 추천해 준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이어간다. 오랜 세월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감성이 이어 주는, AI가 아닌 나만의 아날로그 알고리즘을 따라간 셈이다. 그렇게 세대와 세대를 촘촘하게 이어 준 노래들에는 한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음악가들의 모습이 있었고,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의 목소리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소년 시절 내가 듣던 그 음악을, 이제는 그 시절의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낸 내가 여전히 듣고 있다. 시간은 흘렀고 세상은 달라졌지만, 그 시절의 음악은 여전히 계절을 타고 다시 지금의 나에게 돌아온다.

과연 내년, 다시 계절이 바뀌는 어느 아침에 '어떤날'을 들으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세월이 더 흐르고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 세상이 달라진다 해도, 유년 시절 내 기억에 깊이 새겨진 음악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음악이 가진 힘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시간 속에 묻어 두었던 나를 다시 데려오는 것.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지만, 사람이 남긴 음악은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과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그리고 그 음악을 듣는 순간, 잊고 있던 그 시절의 나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앞으로도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면 나는 여느 때처럼 당신들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당신들 덕분에 마음껏 추억할 수 있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을.

그 시간들을 다시 소환할 수 있게 음악을 만들어 준 그대들에게, 오늘은 새삼스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조동진#조동익#제비꽃#어떤날#장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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