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제 AI 활용도가 다른 교사들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지는 편입니다." 처음 이 주제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처음 한 말이다. 고등학교 선생님으로서 교육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글 쓰기에 내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건 AI를 잘 안 쓰는 이유를 풀어가다 보면, 학교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AI가 내 수업에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온 게 무얼까 생각했더니 학…
본문
| 어느새 생활이 되어 버린 AI. 농민의 스마트폰에도, 취준생의 자기소개서에도, 아이의 숙제에도 AI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만큼 물음표도 함께 늘었습니다. AI가 알려준 정보는 맞는 걸까, 아이가 AI로 쓴 글은 정말 아이의 것일까. 생활 속 AI의 여러 모습과 고민 그리고 나만의 활용법을 공유합니다.[편집자말] |
처음 이 주제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처음 한 말이다. 고등학교 선생님으로서 교육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글 쓰기에 내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건 AI를 잘 안 쓰는 이유를 풀어가다 보면, 학교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AI가 내 수업에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온 게 무얼까 생각했더니 학생들의 발표가 떠올랐다. 이미 AI 시대 등장 이전부터 학생들의 프레젠테이션 발표 자료 중 보기에 좋은 이미지가 많았다. 디자인이 잘 되어 있는 템플릿과 화려한 이미지의 발표가 늘어났다. 수업에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많이 활용하지 않아서 잘 알지 못했는데, 온라인에는 다양한 템플릿을 제공하는 사이트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 발표 자료가 미려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발표를 평가하는 교사의 흡족함이 늘어났을까. 발표의 외양이 좋아진 거에 비하면 만족감은 미미한 수준이다. 발표를 잘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잘했지만, 내용이 정리되지 않은 채 디자인만 화려해진, 외화내빈의 상태가 많아졌다. 내용도 안 좋고 외양도 안 좋은 것보다야 디자인이라도 예쁜 것이 나은 것이겠지만, 교육자 입장에서는 눈곱만큼의 변화일 뿐이다.
AI 이후 찾아온 변화
AI가 확산된 후, 일부 발표 내용상의 변화가 나타났다. 학생들 내용 요약의 질이 좋아졌고, 적절한 부분을 잘 강조했다. 단순히 디자인의 미려함이 생긴 게 아니라 발표 자료의 핵심과 관련해 내용 정리 한 흔적이 많이 발견되었다. 발전은 발전이었다.
이런 발표 자료는 평가자 교사의 흡족함도 확장시켰을까? 처음에는 그런 면도 있었다. 대기업 시제품 발표 프레젠테이션처럼 화려한 외양을 보자,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 같다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발표자의 생각이 발전하며 디자인의 밀도도 깊어지는 방향이 아니었다. AI로 만든 외양만 화려한 발표는 속 빈 강정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의 시사점을 하나 얻을 수 있다. 물론 외양을 적절히 하며, 이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도 교육의 일부다. 학교에 등교할 때 단정한 모습으로 나오고, 수업 시간에 수행평가를 제출할 때 일정한 형식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보다 핵심적인 건 내실을 성장시키는 작업이다. 학생들의 내적 역량이 키워지길 기대하는 게 발표 수업의 교육 목표다. AI는 시간과 노력의 투자 없이 외양의 그럴싸함을 얻게 해주는 도구지만, 학생들의 내적 역량까지 포장해 줄 수는 없다. AI를 활용하는 학생들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과거를 떠올려본다. 지금은 50~60대인 기성세대들이 종이학 천 마리를 접으면서 풋사랑을 전할 때, 거기에 담긴 메시지는 시간이었다. 여기서 시간은 당연히 의미 없이 보낸 시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게다. 누군가 생각하는 마음이 포함된다. 우리가 밤새 발표를 준비하는 시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을 들이는 만큼, 고민과 내면이 깊어지고 지식이 확장된다. AI로 인해 얻게 된 발표 자료의 외양은 교육에서 아주 중요한 시간이 생략된 교육 결과물이다.
사실 고등학교는 대학교 보다는 AI시대가 몰고 온 변화에 대한 교육자의 고민이 덜한 편이다. 평가 시스템 자체가 외부의 도움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대학교로 치면 리포트에 해당하는 과제형 수행평가가 거의 금지되어 있다. 집에서 과제를 해오게 하면 학원이나 고학력 부모의 도움을 받아 제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여론 때문이다.
처음에 과제형 수행평가 금지 지침을 보면서, 과업을 받아 마감을 지켜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경험을 고등학교에서 할 수 없게 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런데 학원강사와 부모의 도움을 차단하려 시작한 금지 지침이 AI의 도움도 막게 했다.
결국 모든 수행평가는 학교 수업 시간에 하고, 이 결과물을 토대로 평가한다. 교실에서 수행평가를 할 때 전자기기의 사용 금지 지침만 엄격히 적용해도 AI의 도움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의도하지 않게 AI 도움 없이 스스로 결과물을 내는 교육 효과를 내게 된 셈이다.
AI가 대신하며 잃은 것
물론 AI의 도움을 받는 부분도 있다.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온갖 그럴싸한 외양·형식의 문서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2학기 평가계획서를 작성하는데, 14쪽의 내용 중에서 대부분은 오려 붙이기만으로 내용을 채워야 했다. 나중에 사소한 트집이 잡히지 않기 위한 표현이나 문구를 다듬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런 작업에 시간을 쏟게 되면, 학생들의 교육 평가를 위한 새로운 평가 방법의 도입이나 평가의 신뢰성이나 타당성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AI는 실제 생산성은 담보하지 못하는 수많은 단순 작업을 줄여준다. 지금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형식을 위해 몇 시간을 소비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간단한 명령 하나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중요시하는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적을 때에도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육부와 학교 문화, 학부모의 욕망은 보강이나 기본 학력이 더 필요한 학생에게마저 온갖 미사여구가 들어간 칭찬을 요구한다. 교사들의 교육력을 감퇴시키던 이 업무 역시 AI가 대신해 주고 있다.
우려도 있다. 교사의 평가 내용이 무미건조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개성 없는 AI 그림이 금세 식상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학생에게 글자 수를 꽉꽉 채운 긍정적인 내용을 적어줘야 하는 무리한 요구를 AI는 훌륭하게 수행한다. 그런데 우리가 꿈꾸던 교육이 정말 이런 것일까.
AI가 대체하고 교사의 고민과 육필이 묻어 나지 않은 학생부 기록은 이 자료를 보고 학생들을 뽑아야 하는 교수들에게 더 많은 고민과 숙제를 안겨줄 거다. 어떤 학생을 뽑을 건지, 어떤 학생이 뽑혀야 하는지와 관련해 교사의 마음과 교수의 마음이 다르지 않을 거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마음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외양 너머의 본질을 보고 싶어 하고, 그걸 바탕으로 마음의 평가를 내린다.
어렸을 때 교실에 궤도가 있었다. 누가 궤도 글씨를 예쁘게 쓰나 뽐내기도 했다. 이후에 투명 필름을 올려놓고 쓰던 바로 기계(OHP)가 유행했고, 그다음에는 교실에 대형 TV가 설치됐다. 화려한 시청각 자료가(PPT)가 대세가 된 시기도 있다. 이제는 AI가 이 모든 작업을 대신해 주는 시대다.
그런데 교육의 본질과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학에서 인수분해는 여전히 공부해야 하고, 영어에서는 장문과 단문을 보며 해석해야 하고, 국어는 아름다운 시를 읊으며 정서를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한 도구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
오늘도 나는 교과서를 들고 칠판에 분필로 핵심 키워드를 적어 가며 할 2학기 수업을 준비한다. 교육에서는 유행보다 우직함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AI가 도구라는 것을 잊지 않을 때, 그 도구가 우리 교육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AI #발표 #수업 #교사 프리미엄
AI시대 탐구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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