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NGO 현장]생명의 마지막 보루

[NGO 현장]생명의 마지막 보루

요약

일본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해 6월 일본 대법원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생활보호급여 삭감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생명의 보루 재판’이라 불린 이 소송은 약 10년에 걸쳐 수급권자들이 싸워온 결과다. 아베 정권에서 실제 정책으로 시행됐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도 원고들은 삭감된 급여를 돌려받거나 별도의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

본문

일본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해 6월 일본 대법원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생활보호급여 삭감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생명의 보루 재판’이라 불린 이 소송은 약 10년에 걸쳐 수급권자들이 싸워온 결과다. 아베 정권에서 실제 정책으로 시행됐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도 원고들은 삭감된 급여를 돌려받거나 별도의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판결의 핵심은 수급권자의 권리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다시 세운 데 있다. 법원은 국가가 생존의 기준을 임의로 낮출 수 없으며, 수급권은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생활보호제도는 한국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유사하다. 일정 소득과 재산 기준 이하인 사람에게 국가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부족한 만큼을 급여로 보충하는 방식이다. 공공부조에 앞서 가족의 부양 가능성을 1차적으로 고려하는 부양의무자 기준 역시 존재한다.

이번 소송은 단순히 급여를 되돌려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공공부조의 기준선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누구나 빈곤에 처할 수 있는 사회에서 가난은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세계가 만들어낸 조건이다. 이 싸움은 오늘과 내일, 모두를 위한 요구였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소송에 참여한 사쿠라는 이렇게 말했다. “생활보호비가 줄어들면 의식주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까지 이어오던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의 장례식에서 부의금으로 5000엔밖에 낼 수 없었다. “이 나이라면 적어도 1만엔은 해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보호비 삭감은 이런 방식으로 삶에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열심히 일하다가도 갑작스러운 병으로 일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생활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3월26일은 최옥란 열사의 24주기다. 장애인이자 노점상, 수급당사자였던 그는 기초생활수급을 시혜가 아닌 권리로 요구했다. 노점을 시작했지만 한 달 소득 33만원 초과 시 수급 탈락이란 경고를 받았다. 그는 한 달 수급비 28만원을 정부에 반납하고 수급비 현실화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다 양육비 소송을 위해 저축한 700만원 탓에 또다시 수급 탈락 위기에 처했다. 결국 그녀는 죽음을 택했다. 왜 가난한 이들은 생존을 허락받아야 하는가.

한국에서 이 질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종종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전화가 온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다는데 그럼 저도 이제 수급이 될까요?” 교류는 없지만 소득과 재산이 많은 가족이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리는 한 당사자의 전화다. 그러나 나의 답은 늘 같다. “폐지가 아니고 기준 완화일 뿐이라, 여전히 탈락할 수 있어요.”

이제는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해 ‘사각지대 발굴’을 말하지만, 정작 연결할 제도는 비어 있다. 여전히 허술한 제도의 문턱 앞에서 돌아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의 판결은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놓았다. 생존의 기준은 국가가 임의로 낮출 수 없다는 것, 수급권은 행정의 대상이 아니라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라는 것. 그리고 권리는 문턱 앞에서 되돌려보내는 방식으로는 결코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