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소설가 박형서 13년 만의 장편 ‘죽도록 맞으며 살아왔다’ 출간소설가 박형서가 13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를 펴냈다. 박형서는 죽도록 맞아도 회복하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을 통해 폭력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를 그려낸다. 본인 제공6·25, 5·18, 형제복지원 등 역사 유머·기발함과 함께 흘러 ‘술술’ “독자까지 아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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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형서 13년 만의 장편 ‘죽도록 맞으며 살아왔다’ 출간
소설가 박형서가 13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죽도록 맞으며 살아왔다>를 펴냈다. 박형서는 죽도록 맞아도 회복하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을 통해 폭력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를 그려낸다. 본인 제공
6·25, 5·18, 형제복지원 등 역사
유머·기발함과 함께 흘러 ‘술술’
“독자까지 아파하지 않길 바랐다”
“신은 박복대에게 일평생 구타당할 운명과 놀라운 회복 능력을 함께 던져주었다. 능력이 운명의 보상일 수 있고, 운명이 능력의 대가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도록 맞으며 살아왔다’ 중)
소설가 박형서가 평생을 죽도록 맞으며 살아온 남자 ‘박복대’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의 삶을 통해 폭력으로 얼룩진 한국 사회를 비춘다. 기발한 상상력과 뭉근한 농담이 합쳐진 소설은 슬픈데도 웃기고, 웃긴데도 슬프다. 무엇보다 잘 읽힌다. 13년 만의 장편 <죽도록 맞으며 살아왔다>(문학과지성사)를 낸 작가를 최근 서면으로 만났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소설은 한국 현대사를 폭력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려는 시도였다. 2000년 현대문학에 소설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선보이며 데뷔하기 전부터 쓰고 싶었던 ‘작가의 꿈’이었다. 그는 “궁리하면 할수록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기다림 속에서 주인공의 성향이 단순한 동네북에서 평화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발전하고, 제주 4·3과 선감학원이 짧은 배경으로 축소되고, 곰이 출현하고, 국밥과 두부가 여러 번 추가됐다”고 말했다.
1930년대 강원도 춘천 유포리의 농가에서 태어난 박복대는 어린 시절 신병을 앓은 뒤 맞고 피나고 뼈가 부러져도 금세 회복하는 불가해한 회복력을 얻는다. 영화 속 슈퍼 히어로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는 맞기만 할 뿐 반격하지 않는다. “묘하게 구타를 불러오는 힘”을 지녀 어딜 가도 맞고 다니면서도 그저 참을 뿐이다. 아버지, 동네 사람들에게 맞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전장을 누비며 중공군에게까지 맞고 다닌다.
5·18민주화운동 때 광주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당시 부산에서, 1987년 민주화 물결 속 서울에서 맞으며 박복대는 한국 현대사의 폭력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겪어낸다. 결국 산속에 은둔하지만 “사람 곁에 있어줘야 자기 역시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세상을 찾는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 요양원에서도 주먹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그를 때린 동료 노인들은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박복대를 가장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다. 그가 평생을 견뎌온 폭력엔 끝까지 어떤 대가나 보상도 없다.
박복대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에 대한 은유인가 작가에게 물었다.
“예수님은 악에 대적하지 말라고 했다. 공자도 대로 한가운데서 ‘끙아’ 하는 이에게 훈계하는 대신 슬쩍 피했다. 그게 옳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많은 성인, 철인, 현인이 비슷한 말씀을 한다. (물론) 박복대는 성자도, 현인도 아니다. 그저 맞는 게 싫고, 제가 맞는 게 싫으니 남들도 맞는 게 싫을 거라 믿고, 그래서 가급적 부딪히지 않으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다. 억울하게 잡혀가는 것도, 정의롭지 않게 두들겨 맞는 것도 지난 70여년간 한국에서 흔히 벌어진 사건이었다.”
폭력의 역사는 박형서 작품 전반에 녹아 있는 ‘유머’와 함께 흐른다. 덕분에 독자는 이 책을 너무 힘겹게 읽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유머는 단순히 웃기는 언행이 아니다. 우주의 먼지라는 초라한 자각과 삶의 비애를 희석하고, 매 순간 겪어야 하는 현실적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며 “비록 박복대는 괴롭힐지언정 그의 삶을 따라 읽는 독자까지 너무 아파하지는 않기를 바랐고, 그래서 특히 괴로운 순간에 자주 유머를 끼워 넣었다”고 했다.
2017년 겨울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 소설은 구상에만 2년이 걸렸다. 이후 방학이나 연구년을 이용해 인천 영종도나 강원도 고성 등에서 초고를 써 내려갔다. 박형서 작가는 고려대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2023년 초부터 ‘문학사상’에 연재한 뒤, 약 2년 동안 전면 수정한 끝에 올해 648쪽 묵직한 분량의 소설로 완성됐다.
작가는 이번 소설이 큰 도전이었다고 했다. 그는 “상상에 많이 의존하는 평소 창작 방식과 전혀 다른 소설이었기 때문”이라며 “엄밀한 팩트를 모으는 게 우선 과제”였다고 했다. 미군의 공중폭격 기록을 통해 한국전쟁을 써낸 김태우의 <폭격>(창비), 민간인 학살과 과거 청산 문제를 다룬 김동춘 교수의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사계절),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글항아리)을 비롯해 다양한 논문도 참고했다. 지명이나 학교 이름, 시장 이름 등은 구글 맵을 펼쳐 찾아본 후 인터넷으로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검색했는데, 이 과정에 인공지능(AI) 비서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숙원과 같던 소설을 끝냈다. 소감을 묻자 “첫 장편의 무대를 태국으로 정하면서부터, 내가 나고 자란 터전의 역사에 오랫동안 마음의 빚이 있다. 이제 그 일부를 덜어냈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소설 속 박복대가 태어난 강원도 춘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