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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의 진짜 위기, 글로벌 안보에 미국이 안보인다

중동 전쟁의 진짜 위기, 글로벌 안보에 미국이 안보인다

요약

중동 위기를 말할 때 국제사회는 대개 호르무즈 해협과 국제유가부터 떠올린다. 해협이 흔들리면 유가가 오르고, 유가가 오르면 세계 경제가 충격을 받는다는 인식은 익숙하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에너지 시장의 동요보다 더 빠르게 악화하는 인도주의 위기다. 유가 충격은 정책과 시장의 조정 메커니즘으로 일정 부분 흡수할 수 있지만, 난민의 급증과 식량·의료·생계 기반의 붕괴는 한 번 임계점을 넘으면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중동 전쟁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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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습으로 파괴된 테헤란 도심의 건물들
공습으로 파괴된 테헤란 도심의 건물들 ⓒ AFP / 연합뉴스

중동 위기를 말할 때 국제사회는 대개 호르무즈 해협과 국제유가부터 떠올린다. 해협이 흔들리면 유가가 오르고, 유가가 오르면 세계 경제가 충격을 받는다는 인식은 익숙하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에너지 시장의 동요보다 더 빠르게 악화하는 인도주의 위기다. 유가 충격은 정책과 시장의 조정 메커니즘으로 일정 부분 흡수할 수 있지만, 난민의 급증과 식량·의료·생계 기반의 붕괴는 한 번 임계점을 넘으면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중동 전쟁의 진짜 위기는 호르무즈 해협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너머에서 진행되는 인간 삶의 붕괴에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26년 3월 6일 중동 상황을 '대형 인도주의 비상사태'로 공식 규정했다. UNHCR에 따르면 이번 위기 속에서 이미 33만 명 이상이 강제이주했고, 이란에서는 분쟁 초기 약 10만 명이 국내 피란에 나섰으며, 실제 규모는 공식 집계보다 더 클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한 위기의 영향을 받는 지역에는 이미 2430만 명의 난민·국내실향민·귀환민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이번 사태가 새롭게 발생한 단일 전쟁위기가 아니라, 이미 취약해진 인도주의 체계 위에 전쟁이 다시 덮친 복합 재난임을 보여준다.

무너지는 것은 항로가 아니라 삶

AD UNHCR는 레바논과 시리아로 인력과 자원을 재배치하고, 국경 감시와 보호 서비스를 유지하며, 비상물자를 사전 배치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의지의 부재가 아니라 수단의 부족이다. UNHCR는 2026년 남서아시아 대응에 4억 5420만 달러가 필요하지만, 2월 말 기준 확보액은 15%에 그쳤다고 밝혔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톰 플레처도 같은 점을 경고했다. 그는 중동 전쟁에 하루 10억 달러가 쓰이는 반면, 인도주의 대응에는 140억 달러 이상이 여전히 부족하며, 위기의 파급 속도가 국제사회의 대응 속도보다 빠르다고 지적했다. 총성은 전선에서 울리지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국경 밖 취약계층의 일상과 생존 조건이다.

"이번 중동 전쟁의 진짜 위기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가능성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삶의 붕괴에" 있다.

이 지점에서 미국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하버드대 인도주의 이니셔티브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원조 동결과 USAID 해체 수준의 구조조정이 글로벌 보건을 위협하고, 인도주의 위기를 악화시키며, 취약 지역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역시 미국의 원조 삭감이 세계를 "덜 건강하고, 덜 안전하고, 덜 번영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의 2026 회계연도 예산 구상은 외교·대외원조 부문에서 300억 달러 이상을 삭감하는 방향으로 제시됐다. 이는 단순한 긴축이 아니라, 군사적 영향력은 유지하면서 인도주의적 책임은 축소하는 선택에 가깝다. 결국 안보를 사람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는 질서가 아니라, 국가의 힘과 억지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좁히는 셈이다.

여기서 미국의 '자국우선주의'는 명백한 역설에 빠진다. 단기적으로는 해외지출을 줄이고 국내 우선의 정치적 메시지를 강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방치된 인도주의 위기는 난민 이동, 감염병 확산, 식량 불안, 지역 불안정이라는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리스크 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인도주의 위기를 방치하는 것은 미래 안보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우는 전략적 실책이다.

인간의 안전보장의 기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략 사태에 관한 각계 공동시국선언 인권, 노동, 종교, 평화, 민중 등 각계 인사들과 시민단체들, 정당과 정치인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략 사태에 관한 각계 공동시국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부당한 침략전쟁 규탄, 침략과 전쟁 중단, 정부는 호르무즈 파병 거부" 등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략 사태에 관한 각계 공동시국선언인권, 노동, 종교, 평화, 민중 등 각계 인사들과 시민단체들, 정당과 정치인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략 사태에 관한 각계 공동시국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부당한 침략전쟁 규탄, 침략과 전쟁 중단, 정부는 호르무즈 파병 거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이 때문에 지금 다시 소환해야 할 개념이 '인간의 안전보장(Human Security)'이다. UNDP는 1994년 인간개발보고서에서 안보를 영토나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삶과 존엄의 문제로 재정의했고, 그 핵심을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로 제시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안보란 전쟁 억지에만 있지 않고, 생존·생계·건강·존엄을 지키는 능력에 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지금 중동에서 붕괴하는 것은 단순한 치안이 아니다. 식량 가격 상승, 물류 차질, 의약품 접근성 악화, 취약국 재정 압박이 연쇄적으로 겹치면서 전쟁의 비용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시장은 시간이 지나면 일부 조정될 수 있지만, 파괴된 생계와 무너진 보건체계, 중단된 교육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전쟁은 군사적 충돌인 동시에 인간의 안전 자체를 훼손하는 구조적 위기라고 보아야 한다. 한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우리는 안보를 군사력이나 경제력 중심으로만 보지 말고, 인간의 안전보장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프레임으로 전쟁과 위기를 다시 해석해야 한다.

줄어드는 원조, 커지는 인간의 비용

'군사비는 늘고 인도주의 재원은 줄어드는 기형적 구조'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미국만의 후퇴가 아니라는 점이다. 옥스팜은 G7 국가들의 2026년 원조 지출이 2024년 대비 28%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의 군사비는 계속 늘어나는데, 전쟁이 낳는 인간적 비용을 감당할 재원은 오히려 줄어드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다른 움직임도 나타난다. 재팬플랫폼은 지난 3월 5일 '중동 위기 대응 지원 2026'을 가동했고, 일본 적십자사는 3월 16일부터 이란과 주변국의 인도주의 위기 대응을 위한 모금을 시작해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의 협력 아래 민간인 지원에 나섰다. 규모와 별개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국제적 책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도 이 위기를 유가, 수출입, 해상교통의 문제로만 좁혀서는 안 된다.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중동과의 경제적 연결이 깊은 한국일수록, 인도주의 위기가 불러올 난민 이동, 공급망 불안, 감염병 확산, 지역 불안정의 파급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 중동의 인간안보 붕괴는 곧 한국의 경제안보와 사회안보에 연결될 수 있다.

그 점에서 한국의 대응은 경제적 이해관계 관리에 머물러서는 부족하다. 인도적 기여 역량을 강화하고, 분쟁 장기화에 따른 난민 유입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대응 전략을 제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번 전쟁이 국제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결국 단순하다.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취약한 사람들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다. 강대국의 패권 지도에서 인간이 지워지는 순간, 안보는 이름만 남고 내용을 잃는다. 미국이 군사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면서도 인간의 안전을 지키는 비용에서 발을 빼는 순간, 글로벌 안보의 지도에서 미국은 보일지 몰라도 글로벌 책임의 지도에서는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지금 국제사회가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총이 아니라 사람이고, 항로가 아니라 생명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안전보장'이며, 오늘의 중동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안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한미일 ‘연계정치’ 및 정책조정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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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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