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홍보 일을 하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가치는 언제나 '신뢰'였다. 좋은 문장도, 멋진 캠페인도, 화려한 메시지도 신뢰가 없으면 보도로 이어지기 어렵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뢰가 없으면 사람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 처음에는 홍보를 '널리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경력이 쌓일수록 홍보는 알림보다 관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Public Relations'라는 말 그대로, PR은 관계이자 신뢰였다. 신뢰는 메시지 하나…
본문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홍보 일을 하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가치는 언제나 '신뢰'였다. 좋은 문장도, 멋진 캠페인도, 화려한 메시지도 신뢰가 없으면 보도로 이어지기 어렵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뢰가 없으면 사람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
처음에는 홍보를 '널리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경력이 쌓일수록 홍보는 알림보다 관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Public Relations'라는 말 그대로, PR은 관계이자 신뢰였다.
신뢰는 메시지 하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천천히 쌓인다. 기자와의 관계, 시민과의 관계, 조직 내부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까지. 결국 신뢰는 말의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축적이다. 이번 AI 생태계 혁신 포럼에 참석한 것도 그런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한 기자가 추천해준 자리였다.
AD 비가 내리던 9일 아침, 더 플라자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 AI 생태계가 만드는 산업대혁신'을 주제로 ABC 개국 기념 AI 생태계 혁신 포럼이 열렸다. 처음 'ABC'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미국 ABC 방송국이 한국에 지사를 만드는 줄 착각했다. 알고 보니 ABC는 'AI Business Channel'의 약자였다. 아주경제가 국내 최초 AI 전문 경제방송을 개국하며 이를 기념해 마련한 포럼이었다.
아주경제는 신문, 통신, 디지털 플랫폼에 이어 방송까지 연결해 AI 산업과 정책, 투자, 기술을 잇는 플랫폼으로 키우려는 구상을 가진 듯했다. 포럼 구성도 그 방향을 보여주었다. AI와 기술, AI와 금융, AI와 산업을 나누어 다루고, 알파고 10년을 통해 AI가 인간과 사회에 던진 질문까지 포함했다. AI 시대의 산업 변화와 인간의 판단, 신뢰, 책임 문제까지 다루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특히 기조연설자로 이세돌 전 프로 바둑기사이자 UNIST 기계공학과 특임교수를 세운 점이 인상적이었다. 강연 제목은 '알파고 대국 10년, 이세돌의 복기'였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유일하게 한 번 승리한 인간, 그리고 그 대국 이후 바둑과 인간, AI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인물이 기조연설자로 섰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이었다.
그날 내가 얻은 생각은 분명했다. AI 시대에는 신뢰가 더 중요해진다. 인간은 방향을 설계하고 큰 틀의 답을 제시해야 하며, AI는 그 방향 안에서 수행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새로운 격차도 생길 것이다. AI를 잘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질문을 설계하는 사람과 질문조차 만들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의 문맹이 글자를 읽지 못하는 것이었다면, AI 시대의 문맹은 질문하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하고, 검토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프롬프트 앞에서 막막해지는 사람,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답변의 빈틈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새로운 시대의 문맹이 될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에도 오래전부터 중요하다고 여긴 자기인식이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내가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어떤 가치와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 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대화와 반문, 자기인식의 순간들이 있었을까. 그는 사람들에게 정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졌다. "너는 정말 알고 있는가." "네가 안다고 믿는 것은 무엇인가." "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AI 시대의 인간에게도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AI에게도 제대로 묻지 못한다.
이세돌 9단의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알파고 10년 후,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하사비스와의 만남과 그 때 당시의 소감이었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를 만든 인물이자, 이후 알파폴드를 통해 과학의 영역에서도 큰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AI가 인간을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인 동시에, AI가 인간의 과학적 발견을 도울 수 있음을 증명한 사람이다. 알파고가 인간에게 자기인식의 충격을 주었다면, 알파폴드는 인간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세돌은 10년 전 하사비스 알파고 대국 제안에 하나의 이벤트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대국 전에는 "질 자신이 없다"고 했지만, 대국 후에는 "이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다가온다. 어쩌면 해맑은 마음으로 인간과 AI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장면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경기가 끝난 후, 이세돌에게 바둑은 더 이상 이벤트가 아니었다. 여섯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너는 바둑을 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실제로 평생을 바둑 안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바둑은 직업이기 전에 삶이었다. 그런 그가 알파고와 마주했다. 세상은 그것을 인간과 AI의 대결로 보았지만, 이세돌에게는 자신이 가장 사랑한 세계가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이세돌이 했던 말이 오래 남는다.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정작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바둑을 예전처럼 둘 수 없게 되었다는 말. 그 말은 기술의 승리가 한 인간에게는 상실의 경험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 모습이 AI 시대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바둑에서 대국이 끝나면 복기가 시작된다. 어디서 수가 갈렸는지, 어떤 선택이 더 나았는지, 상대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다시 살핀다.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지만, 복기가 끝나야 비로소 대국은 완성된다.
홍보도 마찬가지다.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 이 메시지가 믿기지 않았는지, 어떤 맥락이 빠졌는지, 상대가 진짜 알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관계도 복기 속에서 깊어진다. 신뢰는 설명하고, 듣고, 고치고, 다시 책임지는 과정에서 생긴다.
알파고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질문 앞에 서 있다. 'AI가 인간을 이길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인간은 AI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AI가 답을 내놓는 시대에 인간은 어떤 질문을 품을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 안에 '얼마나 많은 존중과 배려와 책임을 담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얼마나 빠른가'만 묻기보다 '왜 필요한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믿어도 되는가'를 서로에게 물었으면 좋겠다. 서사, 신념, 철학으로 나만의 색깔을 가지며 경기를 펼치길 바란다. 복기가 끝나야 관계로 신뢰도 비로소 완성되듯 , 결국 미래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 신뢰이자 관계가 될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기사가 게시가 되면 확인 후 브런치에서 늦게 발행됩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발행을 우선시 합니다.
#AI#이세돌#홍보#질문#포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네이버 채널구독 다음 채널구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 신미선 (shinbi96) 내방공공기관에서 20년 이상 홍보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며 취미로는 아이들의 말과 사회현상을 원천으로 삼아 브런치에 동화와 에세이를 씁니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과 공간, 현상을 담아 AI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을 제안합니다.
갤러리
배재고·광주일고 학생들, 5·18민주묘지 참배
1/24
-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오찬회동
-
배재학당총동창회, 대국민탄원서 제출
-
더불어민주당 워크숍 "일하는 국회 만들겠다"
-
당대표 출마 선언한 김민석 "국정성공, 총선승리로 보답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