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어렸을 때 한자와 중국어를 공부하며 내가 처음으로 만난 외국인은 하얼빈사범대학교의 교수님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처음 가 본 외국도 중국이었다. 한국에서 자라는 동안 나에게 중국은 공산당과 빨간색으로 상징되는, 왠지 모르게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나라였다. 그런 영향인지 빨간색은 강렬하면서도 어딘가 두렵고 부담스런 색으로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스무 살에 처음 만난 중국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달랐다.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고 생활하면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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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한자와 중국어를 공부하며 내가 처음으로 만난 외국인은 하얼빈사범대학교의 교수님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처음 가 본 외국도 중국이었다.한국에서 자라는 동안 나에게 중국은 공산당과 빨간색으로 상징되는, 왠지 모르게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나라였다. 그런 영향인지 빨간색은 강렬하면서도 어딘가 두렵고 부담스런 색으로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스무 살에 처음 만난 중국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달랐다.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고 생활하면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마음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중국은 내게 다른 나라와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지금의 이주민을 만나는 일을 선택하게 만든 배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안은 일을 통해 세계를 만난다는 생각에 직업에 대한 만족감도 컸고, 일 자체가 즐거웠다.
AD 하지만 몇 년 전 일터를 옮기면서 다국적 이주민보다는 다양한 환경 속의 이주배경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그중 70~80%가 중국 배경의 학생들이다. 그래서 나에게 중국은 낯선 나라가 아니라 삶과 일이 이어준 익숙한 연결고리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번 하얼빈은 처음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도시는 아니었다.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이하 법인)에서 현대중국도시기행 프로젝트를 첫 방문 도시로 선정할 때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조카가 하얼빈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고, 하얼빈 출신인 제자가 결정적으로 불을 지폈다. 그렇게 나는 추운 겨울의 도시이자 우리 학생들의 고향인 하얼빈 탐방에 함께하게 되었다.
여행 일정이 정해지자마자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얼빈 엄청 춥다던데 뭘 가져가야 하지?"
"패딩은 두 벌 입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학생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말했다.
"샘, 너무 오버하지 마세요. 저희는 아무리 추워도 히트텍에 기모 옷, 패딩, 모자 정도만 입어요. 실내에 들어가면 엄청 덥거든요."
문 앞에 로봇 배달원이
학생들의 조언에도 나는 결국 방한용품들을 잔뜩 챙겨 일행보다 하루 먼저 하얼빈에 도착했다. 자유여행을 좋아하는 조카의 요청으로 부족한 준비 속에서 출발하며 걱정이 많았지만, 든든한 지원군인 제자가 세심하게 많은 것들을 챙겨 주었다. 중국은 충전 단자가 다르다며 어댑터와 휴대용 와이파이를 챙겨 주었고, 숙소와 픽업 차량을 예약해 주는 것은 기본이었다. 오래전에 가지고 있던 중국 돈도 알리페이로 환전해 주었고, "웰컴 드링크를 꼭 보내 드리고 싶다"며 밀크티와 간식까지 준비해 주었다.
짐을 풀고 있는데 제자가 문을 열어 보라고 연락했다. 문 앞에는 로봇 배달원이 도착해 있었다. 처음 보는 로봇 배달이 낯설어 조카에게 대신 받아보라고 했다. 조카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버튼을 몇 번 누르자 로봇의 배 부분이 자연스럽게 열렸고, 그 안에는 예쁘게 디자인된 보냉백이 있었다. 20여 년 전 내가 기억하는 중국에서는 지금처럼 배달 문화가 없었다.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하면 얇은 비닐봉투에 담아 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로봇이 예쁘게 디자인 된 보냉백에 담긴 밀크티를 문 앞까지 가져다 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중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저녁부터 본격적인 하얼빈 생존기가 시작되었다.
호텔 직원의 추천으로 양꼬치집을 찾아갔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다. 알리페이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택시를 부르기도 쉽지 않았고, 상점에서 물건 하나를 사는 일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중국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이 어렵고 현금도 거의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알리페이만 믿고 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얼빈에서는 현금을 받는 곳도 의외로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식당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찐 맛집'이었다. 배도 고프고 지쳐 있었지만 조카는 "이 정도면 진짜 맛집인가 보네요"라며 기다려 보자고 했다. 문제는 휴대폰이었다. 추운 날씨에 길을 찾느라 휴대폰을 계속 사용했더니 배터리가 방전 직전이었다. 겨우 자리에 앉았지만 음식 주문도 QR코드로 해야 했고, 주문을 마치자마자 휴대폰이 꺼져 버렸다.
순간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충전기를 빌릴 수도 없었고, 결제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상황을 지켜보던 그분은 직접 결제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다행히 한국 돈은 가지고 있어서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휴대폰이 곧 지갑이고 지도이며 일상 그 자체
휴대폰이 꺼진 뒤에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겨우 길을 찾아 숙소에 도착했다. 그날 중국에서는 휴대폰이 곧 지갑이고 지도이며 일상 그 자체라는 말을 실감했다. 센터에는 휴대폰을 두 개씩 가지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제야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 날 오전에는 조카와 자유여행을 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일행이 하얼빈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전날 밤 급하게 먹은 음식이 탈이 났는지, 조카가 아침부터 두통과 구토 증세로 힘들어했다. 가져간 약을 먹였지만 상태는 쉽게 나아지지 않아 숙소에서 쉬었다.
오후가 되어 일행이 하얼빈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만날 때와는 또 다른 반가움이 있었다. 타지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든든함이 생겼다. 다행히 저녁 무렵 조카의 상태도 조금 나아져 우리는 중앙대가를 함께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3일차부터는 본격적인 하얼빈 여행이 시작되었다. 숙소 근처의 하얼빈시 박물관을 시작으로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 태양도, 판다관, 731부대 박물관, 하얼빈공과대학교, 바로크 거리 등 하얼빈 곳곳을 둘러보았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는 교과서 너머의 역사를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오늘의 삶이 수많은 의로운 사람들의 희생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태양도에서는 녹아가는 눈 조각상들이 빙등제가 끝난 뒤의 여운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731부대 박물관은 예상보다 절제된 전시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국인 관람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후에 찾은 바로크 거리는 이름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중국 특유의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어딘가 익선동 같은 감성도 있었지만, 훨씬 생활감 있고 정겨운 느낌에 가까웠다. 그곳에서 제자가 추천했던 생강 콜라도 발견했다. 당일에는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다 마시지 못했고, 결국 공항에서 일행들과 나누어 마셨는데 반응이 꽤 재미있었다. 한 모금 마신 사람들마다 얼굴이 붉어지고 땀을 흘리는 모습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에도 중국, 하얼빈은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로 남았다. 예상보다 높아진 물가, 휴대폰 없이는 일상이 어려울 정도의 디지털 환경, 유럽풍 건물 사이로 남아 있는 지방 도시의 정겨움까지. 20여 년 전 내가 기억하던 중국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얼마 전 조카에게 "다음에도 같이 갈 거지?"라고 물었다. 조카는 잠시 고민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중국에서 박물관 보고 동물원 가고, 한국이랑 비슷하던데요? 박물관은 재미없어서 다음에도 박물관 가면 생각해 볼래요."
중국어를 모르니 텔레비전을 틀어도 재미가 없고, 와이파이가 연결되어도 한국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앱들은 제대로 접속되지 않았다. 휴대폰과 AI 서비스에 익숙한 지금의 10대에게 하얼빈은 심심한 도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이 조카에게 중국을 '노잼의 기억'으로 남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추운 거리에서 맞았던 바람, 처음 본 로봇 배달원, 낯선 언어와 음식 앞에서 당황하던 순간들도 또 다른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언젠가는 이번 여행도 '처음으로 중국이라는 낯선 세계를 만난 시간'으로 남지 않을까.
무엇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었다. 알리페이 문제로 난처해하던 나를 대신해 결제를 도와준 사람, 맥도날드에서 케첩을 한가득 챙겨 주고 내가 식판을 정리하려 하자 "그냥 두고 가라"며 끝까지 필요한 것을 챙겨 주던 직원, 서툰 중국어에도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쓰던 식당 직원들 그리고 오래전 처음 중국에 갔을 때와 다르지 않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준 사람들. 여행을 마치고 돌아보니 한 도시의 기억은 결국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그렇기 때문일까, 일을 하면서도 나는 종종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나 역시 대한민국을 처음 경험하게 하는 사람일 수 있겠구나. 이번 하얼빈 여행도 결국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누구를 만났는지로 더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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