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아이들이 꽤 좋아하는 그림책 의 주인공은 두더지다. 어느 날 갑자기 작은 두더지 머리 위로 똥이 떨어진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두더지는 이게 누구 똥인지 묻는다. 토끼에게 묻고, 말에게 묻고, 소에게 묻고, 돼지에게 묻는다. 머리위에 똥을 얹은 채 돌아 다니는 두더지와 동물을 보며 아이들은 깔깔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똥과 동물 이야기라서 인기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이야기를 움직이는 힘은 질문이다. 두더지는 똥이 머리에 떨어진 후 화…
본문
<아동인권 365 - 아동권으로 동화 읽다>는 매달 한 편의 동화를 읽으며, 아동권의 언어로 다시 묻고 정리하는 연재입니다.
아이들이 꽤 좋아하는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주인공은 두더지다.
어느 날 갑자기 작은 두더지 머리 위로 똥이 떨어진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두더지는 이게 누구 똥인지 묻는다. 토끼에게 묻고, 말에게 묻고, 소에게 묻고, 돼지에게 묻는다. 머리위에 똥을 얹은 채 돌아 다니는 두더지와 동물을 보며 아이들은 깔깔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똥과 동물 이야기라서 인기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이야기를 움직이는 힘은 질문이다. 두더지는 똥이 머리에 떨어진 후 화를 내거나 복수하지 않는다. "누가 그랬어?", "정말 네 것 맞아, 아니야?" 끝까지 이유를 묻고 확인한다. 두더지가 원하는 것은 사과보다 먼저 납득할만한 설명이다.
아이의 질문, 얼마나 환영할까.
AD 아동권 관점에서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 정도가 아니다. 아이가 가진 정당한 권리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2조는 아동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현하고 그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를 담고 있다. 의견을 가지려면 먼저 이유를 묻고,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질문은 참여의 출발점이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속 두더지는 어른들이 원하는 '착한 아이'가 아니다. 누구 말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다. 직접 보고, 비교하고, 확인한다. 작은 두더지는 자신보다 덩치 큰 다른 동물에게 꿋꿋하게 "누가, 왜?"라며 묻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도 아이가 어릴 때는 질문을 환영하고 칭찬한다. "왜?"를 많이 하는 아이를 똑똑하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아이가 자랄수록 질문이 조금씩 불편해진다. 부모와 교사를 향한 질문, 규칙과 권위를 향한(다고 여겨지는) 질문은 더더욱 그렇다.
"왜요"가 금지어가 된 순간
얼마 전 초등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무심코 "왜?"라고 물었다. 아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꾸했다. "우리 교실에선 '왜요'가 금지어예요." 그 순간 원래 하려던 질문은 잊었다. "왜, 왜요가 금지어야?" 하고 되묻자 돌아 온 아이 대답은 더 놀라웠다. "왜요랑 죽어요가 우리 반 금지어예요." 왜 그런지 아느냐고 다시 묻자 아이는 말했다. "몰라요. 왜 그런지 몰라요. 그냥 안 돼요." 옆에 있던 다른 아이도 거들었다. "우리 반은 '죽어라'랑 욕이 금지어예요."
욕설과 함께 "왜요"가 금지어가 된 교실. 이상하지 않은가. 욕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말이다. 그런데 "왜요"는 이유를 묻는 말이다. 이유를 묻는 게 공격처럼 취급되는 셈이다. 질문이 답보다 중요한 AI시대라며 질문과 비판적 사고를 장려하지만 어떤 교실에서는 질문 자체가 금지어다.
물론 교사에게도 이유는 있다. "왜요?"가 설명과 관계없을 때다. 교사 지시를 거부하는 말투로 사용될 때도 있다. 수업 흐름을 끊고, 정해진 시간 안에 수업을 마치기 어려워질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교실은 "왜요"를 금지어로 정했으리라.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질문하는 태도와 무례한 태도를 구분하지 않은 채 질문 자체를 금지한다면, 아이는 예절이 아니라 판단을 멈추는 법을 배우게 된다. 생각해 보면 "왜요?"는 그저 반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요는 어른에게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가장 짧은 말이다. "왜 안 되는데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라는 질문 앞에서 권위자는 설명할 책임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질문을 금지하면, 권위자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어른들은 병원에서 치료 받을 때도 이유를 묻는다. 계약서 조항을 확인하고, 어떤 공공기관에서 납득되지 않을 때도 설명을 요구한다. 꼼꼼히 살피고 이유를 묻지 않으면 권리를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다. 어른이 하는 질문은 권리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어째서 아이 질문은 정당한 권리가 아니라 반항이나 말대꾸로 받아들일까.
두더지에게 질문을 받은 동물들은 어떻게 했을까. 동물들은 누구도 두더지에게 "뭘, 그런 사소한 일을, 왜 그렇게 따지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질문 자체를 문제 삼지도 않는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귀찮아하지도 않는다. 저마다 자기 똥을 보여 주며 아니라는 근거를 내놓는다. 모두 설명한다. 두더지의 질문을 무례함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인다.
이야기 속 두더지는 자신보다 훨씬 큰 동물을 상대로 끝까지 이유를 질문한다. 추궁하는 모습이 꽤 당당하다.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억울한 일을 그냥 넘기지 않는 두더지의 자신있는 태도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왜요? 금지는 질문보다 권위에 순종하는 방법을 먼저 가르친다. 아이는 정해진 규칙을 배우고 순응하는 법은 익힐 수 있다. 그러나 이유를 묻고, 설명을 요구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법은 배우기 어렵다.
두더지는 머리 위에 떨어진 똥의 주인을 끝내 찾아냈다. 그런데 "왜요"가 금지된 교실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이유를 끝까지 물을 수 있을까. 교실과 사회에서 금지한 "왜요"는 단지 두 글자만은 아니다. 어른이 설명해야 할 책임이다. 결국 아이들이 어른 없는 공간에서, 교실 밖에서, AI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도록 방조하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와 개인SNS페이지와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울프 에를브루흐 그림,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사계절(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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